brunch

썸 타다

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3)

by 철없는박영감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처음엔 가성비를 따졌다. 스마트폰 약정과 단말기 할부가 곧 끝난다는 메일을 받으니 되지도 않는다는 5G를 뭐 하러 계속 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LTE요금제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요금제도 가장 저렴한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집에만 있어서 한 달에 쓰는 데이터량은 600MB 언저리였다. 나머지 5G가 넘는 데이터가 매달 그냥 사라지고 있었다. 생각은 점점 무조건 아끼자는 쪽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절약의 물꼬를 트니 많은 것들이 낭비로 다가왔다. 특히 관리가 귀찮다고 구독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씌어놓은 할부제품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매트리스, 비데,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등 계약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고 구독취소를 하고 싶은 것들이 왜 이렇게 집 안에 많은지... 기간도 5~6년으로 길게 설정되어 있다. 전세도 갱신청구권을 써야 겨우 4년을 사는데, 무슨 구독을 5~6년짜리를 계약했담...


이렇게 생각이 뻗치자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어쩌다 신작 리스트만 체크하는 넷플릭스를 끊었다. 광고형이라 월 5,500원 밖에 안 나가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드니 그냥 둘 수 없었다. 현재는 1년 결제로 할인받은 티빙만 살아남았다. 이 녀석도 획기적인 할인요금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끊을까 생각 중이다. 사실 돈 아깝지 않게 보고 있는 중이긴 하다.


다음으로 XBOX... 그놈의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 뭐라고, 게임 하나 하겠다고 수백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느니 콘솔 게임기를 사는 게 돈 아끼는 거라고 생각하고 질렀는데, 음... 게임기 구입과 별도로 이 녀석도 구독이 필요했다. 그리고 게임 타이틀도 값이 꽤 나갔다. 특히 이게 KRW로 결재되다 보니 수수료와 환율이 적용되어 실제 표시가격보다 훨씬 더 비싼 경우가 허다했다. 바로 끊고, 카드 해외결재도 전부 막았다.


참 카드도 쓸데없는 연회비가 아까워 주거래 은행과 구독료 할인 카드 2개만 남기고 전부 해약했다. 그리고 각종 포인트 카드... 생각해 보니 포인트를 많이 쌓으려면 그만큼 많이 써야 한다는 결론이니, 포인트 적립하고, 나중에 할인받기 전에 안 쓰는 것이 가장 절약하는 방법이었다. 지갑에 두툼하게 꽂고 다니던 것들이 없어지니 지갑이 예쁜 제 모습을 다시 찾았다. 복잡하던 셈법도 훨씬 간단해졌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마지막으로 음악 없이는 못 산다는 주의였는데, 스트리밍 서비스도 낭비같이 느껴져서 VIBE도 끊었다. 그리고 아이폰에 음악파일 동기화를 하려고 예전에 구입했던 MP3 파일을 다시 찾아봤다. 조금 옛날 노래라서 구식이기는 했지만, 한 개 한 개가 전부 소중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일을 다시 다운로드하다 보니 그 옛날 CD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부모님 집에 가서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가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맞아. 맞아. 이 노래 한참 듣고 다녔는데... 그땐 참신하고, 트렌디했는데... 이젠 촌스러워서 못 들어주겠네... 크크크. 그땐 뭐가 그렇게 좋았담...'


지지리 궁상떨고 앉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고, 물가는 계속 오르고, 수입도 없어지면서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나는 그저 지금까지 이 모든 것들과 허무하게 썸만 타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리밍과 구독으로 살다 보니 '소유'한다는 소중한 의미를 잊고 살았다. 잠깐 써보고, 아니면 반품하고... 일단 경험해 보고, 아니면 버려두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 그야말로 '썸' 그 자체이다. 이젠 진짜 사랑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소중히 간직하는 가슴 시린 사랑! 가슴 졸이고, 애 태우는 불같은 사랑!


인생이랑 썸만 타다 갈 순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슨 맛으로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