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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Nov 15. 2024

덜 불행한 삶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습니다. (8)

행복은 원인불명


출처 : MBC 무한도전

    휴게소 화장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한 잠언이 하나 있다. 보통 노홍철 사진을 붙여놓고 많이 달아놓던데... 잘 모르겠지만, 무한도전 시절에 '긍정마인드'를 주제를 다룬 에피소드에서 소개가 됐었나 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아마 행복의 원인을 고민한 것 중에 현재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웃어서 행복하다'라... 음... 누군가에게 갑자기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라. 아마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거울을 보면 분명 웃고 있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장금이가 했던 유명한 대사가 있다. 「홍시 맛이 나길래 홍시라 한 것인데, 왜 홍시라 생각했냐고 물어보시면 입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 행복도 이와 같지 않을까?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한 것인데, 왜 행복하냐고 물어보시면 마음에서 행복한 감정이 들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이유가 있기에 하나를 콕 집어서 이것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불행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행불행의 원인이 같을 수도 있다. 즉 원인불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냥 행복한 것이다. 뭔가 특별한 원인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단지 웃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오해한다. 행복은 뭔가를 특별히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희생이 크면 클수록 뒤따라오는 '행복'이란 보상도 더 커질 것이라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처럼 행복을 투자의 결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희망'이라는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 보물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행불행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불행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면 '하이-리턴, 하이-리스크'로 거꾸로 작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보물인 '희망'이 실속 없이 고문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상쇄되어 허무하게 제로섬으로 끝나버린다.


잘못된 인과관계


    그나마 '0'이 되면 차라리 낫다. 어떤 경우는 행불행이라는 결과에 대해 잘못된 인과관계를 적용해서 남의 다리 긁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생긴다. 행복이 진통제고 오아시스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행복을 투자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으니, 이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살펴볼까? 투자에서 사람들이 판단을 잘못하는 이유로, 아니 더 심각하게 '판단의 적'으로 전문가들은 인지편향(cognitive bias , 認知偏向)을 말한다.

  

    인지편향은 사람들이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이다. 이 개념은 1972년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으며,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어림짐작 방식을 통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집착을 불러온다. 그리고 고통에 빠트린다.


인지편향의 유형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을 강화해 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뉴스만 읽고, 반대되는 의견은 무시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짜 뉴스도 문제인데 요즘은 진짜 뉴스도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으면 가짜 뉴스로 몰아간다. 유튜브 쇼츠로 시청할 땐 행복한데... 나중에 도파민 중독에 빠져 불행해진다.


    고정편향(Anchoring Bias): 초기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처음 제시된 가격이 이후의 가격 비교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 최근에 접한 정보나 쉽게 떠오르는 예시에 기반하여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뉴스에서 본 범죄 사건 때문에 특정 지역이 매우 위험하다고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경우다. 특히 요즘 블랙박스 영상이 많이 공유되며 '운전 공포증'을 많이 호소하고 있다. 나도 화물차 판스프링 불법개조 사고를 보고 한동안 고속도로를 가지 못했다.


    편승효과(Bandwagon Effect):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념을 쉽게 믿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다수가 특정 제품을 구매하면 자신도 그 제품이 좋다고 믿고 구매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운동기구나 건강기능식품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운동기구는 광고 속 몸짱 모델을 보고 구입하지만 대부분 비싼 옷걸이로 전락하거나 방치되고, 건강기능식품은 약이 아니고 식품이다. 그래서 효과가 의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대광고나 일부 건강지식프로그램과 홈쇼핑의 담합이 문제 된 적도 있다. 게다가 둘 다 장기 할부로 빠져나가는 돈은 도둑맞는 기분도 든다.


    선택지원 편향(Choice-Supportive Bias): 자신이 한 선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로또를 매주 사면서도 언젠가는 당첨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벼락거지되기 싫다며,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며 영끌족이 됐다가 신용불량자 된 사람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일희일비


    결국, 우리는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또한 일희일비하며 행복과 불행의 진폭이 매우 큰 세상에 살고 있다. 행불행의 합은 결국엔 0으로 수렴된다. 즉 허무하다.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낭패를 본다. 그래서 행복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르기보다는 덜 불행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행복을 투자에 비유했으니 마지막까지 투자에 비유해 본다. 아마 오늘 얘기는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얘기일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성공 스토리가 안정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사람을 바보취급하기 때문이다. 만약 행복이 재화라면, 아니 하다못해 실체만 있더라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은 실체가 없고 상대적이다. 


    그래서 더 이상 큰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덜 불행한 삶을 선택한다.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모든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비교의 대상이 되는, 혹은 그 기준이 되는, 그래서 타락하게 만들고 고통을 주는 세속적인 행복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선 나만의 행복 공식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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