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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있다.

봄맞이 (6)

by 철없는박영감
유행이 오고 있다


새로 산 옷들이 하나둘 배송되고 있습니다.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등장한 켄드릭 라마,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요즘 그의 스텝 퍼포먼스가 밈으로 유행 중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 쇼츠에는, 한 꼬맹이가 엄마 속을 태우며 마트에서, 신임 초등학교 교사는 새 학기의 첫 출근길에, 그리고 한 무리의 흑인 청년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동네를 활보합니다. 이 밈의 세계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덕분에 요즘 '부츠컷'이라 불리는 플레어진이 유행입니다. GD도 공항패션으로 입고 나타났다며, 패션 유튜버들은 앞다퉈 2025 S/S 유행템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럴 줄 모르고 샀는데...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입니다. 옷을 산 게 정말 오랜만입니다. 벌써 5년은 된 것 같습니다. 퇴사 직전, 물욕에 취해 쇼핑을 하고는 처음입니다.


전주에 살 때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고 운전만 하고 다니다가, 퇴사 후 버스를 타고 다니며 길구경 하는 재미를 알게 되어 특별히 살 게 없어도 아이쇼핑이라도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의정부로 이사 와서는 잘 정비된 산책로 덕에 쇼핑보다 걷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시장구경도 하고 마트 할인 제품을 사러 다니며 절약하는 즐거움으로 만족했지요. 이사 온 지난 2년 동안 양말과 신발을 제외하고는 옷을 산 적이 없습니다.


택배가 오고 있다.


그런데 봄바람 때문일까요? 갑자기 옷을 사고 싶어 졌습니다. 물욕으로 가득 찼던 5년 전, 온라인 쇼핑으로 옷을 사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치수를 보는 눈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내 몸상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샀다가 안 어울린다고 남에게 옷 몇 꾸러미를 주고 나서 얻은 능력입니다. 지금 같으면 반품했을 텐데, 그때는 왜 귀찮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옷은 역시 백화점에서 명품으로 사야 한다’며 투덜거리기만 했죠.


지금은 다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패션에서 만큼은 '메타인지'가 장착되었죠.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으로 사도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쇼핑에 자신감이 붙은 저는, 봄바람에 취해, 다양한 옷들을 잔뜩 사들였습니다. 앞서 말한 플레어진, 올여름에 유행한다는 모카무스 컬러의 리넨 점프슈트, 젠더리스가 유행한다고 해서 시스루를 기대하며 펀칭니트까지... 그동안 아방가르드 패션을 추구하면서도 살쪘다는 자기 객관화는 철저했기에 기피했던 디자인의 옷들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크크크


백화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하기도 했고, 클릭 몇 번이면 되니 자라나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보다 편리했죠. 그래서 아주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옷을 샀습니다. 새로 산 옷들이 차례로 오고 있는데, 봄의 시작을 기다리며, 이 작은 행복을 만끽할 생각에 행복해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4D가 오고 있다.


바로 냄새입니다. 도착한 플레어진은 화학처리를 하고 마무리를 제대로 안 했는지 석유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대했던 시스루 니트에서는 이상한 누린내가 납니다.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세탁 후 옷이 줄어들까 봐 망설여집니다. 뭐 결국, 팔자에도 없는 손빨래를 하게 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옷 하나하나 손빨래를 끝내고 나니, 이 봄의 시작이 참 다사다난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작은 변수를 마주하며 새 옷들과 함께할 일상에 살짝 설레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아마도, 이 봄은 새롭고 특별한 향기와 함께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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