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5)
최후의 발악
동장군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을 준비하는 사이, 회심의 반격을 꾀하고 있었나 봅니다. 내일은 눈이 올 수도 있다고 하지요? 주말 내내 쌀쌀한 바람에 ‘쓰읍, 어후, 추워!’ 하며 몸을 움츠리고 다녔습니다. 정작 북극 한파가 몰려왔을 땐 생각보다 덜 춥다며 가슴을 활짝 펴고 다녔었는데요. 결국, 마음가짐에 따라 느껴지는 온도마저 다르게 느껴지곤 합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사실 세상에 그리 어려운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길이든 끝을 알고 간다면, 또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있다면 막막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반환점을 돌아 되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점을 보러 가기도 하고,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건네는 상상을 하기도 하죠. 꽃샘추위처럼 현재의 고난 끝에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그 고난을 견뎌낼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늘 불투명하게 느껴지고, 지금의 고생이 헛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모든 것이 시간 낭비라고 자책하게 되기도 하죠. 그러나 진실은, 지금 겪는 고난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우리가 미래를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대로라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러한 뻔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 때, 우리는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생각에만 머무를 때, 사람들은 흔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도피처로 물러서 버립니다. 그리고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움츠리기도 하죠. 아, 실제로 아직 인생의 계절이 겨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숨어만 있다면, 창밖을 내다보지 않는다면, 그 계절감조차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밖은 한 번씩 살펴보도록 해요.
멀지 않은 곳에 봄이 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