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다.

프롤로그

by 철없는박영감
시속 120km


3년 동안, 내 인생은 정차 중이었다. 아니, 엔진이 고장 난 채 폐차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겉으론 건강상의 이유라 둘러댔지만, 진실은 다 타고 비어버린 연료통이었다. ‘번아웃’이라 불러도 될까 고민했지만, 그건 너무 요란한 말 같았다. 내 번아웃은 조용했고, 길었다.


열정과 노오력으로 뚫기엔 세상의 벽은 너무 두꺼웠다. 기성세대의 완고함과 적폐의 폐쇄공포는 망치 대신 벽돌을 손에 쥐어줬다. 그걸로 감히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성벽을 쌓았다. 하지만 결국 지쳐서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선 산책길을 걷고, 마을버스를 타며 벽돌을 하나하나 허물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의 RPM은 '0(제로)' 조금 위를 겨우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의정부에서 안성까지, 세종포천 고속도로. 용인 근처에 다다르자 시속 120km 구간이 나타났다. 그전까지 100, 110km도 충분히 빨랐는데, 액셀을 더 꾹 눌러야 했다. 2008년식 ‘슴삼이(SM3)’를 처음 뽑았던 날, 잠깐 과속했던 기억을 제외하면, 내 운전은 늘 여유 속도 95km 언저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속도를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지금은 직진 중이다. 목적지는 '안성맞춤 IC'.


안성은 내게 휴게소의 도시다. 생기발랄하던 시절, 주말마다 서울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다시 일주일을 살아내기 위해 새벽 고속도로를 타며 들르던 곳이다. 안성휴게소에서 캔커피를 마시며, 남은 거리를 계산하던 때가 아직도 선명한데... 이제 나는 그 도시에서 임기제 공무원이 되었다. 어쩌면 그때가 사주팔자에 기록된 ‘관운’의 시작이었을까...?


사주에는 늘 “관운이 있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공무원이라는 낱말은 늘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은, 예고 없이 시동이 걸리는 법이다. 고장 난 차도 정비를 마치면 다시 달릴 수 있듯… 나는 그렇게, 낯선 행정의 고속도로에 입문했다. 46살. 수명이 90이라면 정확히 중간 지점. 나는 안성이라는 휴게소에 멈춰 서 있다. 정비를 받고, 연료를 채우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시동을 다시 거는 곳.


그렇게, 나는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