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자들의 전설
무거운 방패
방패의 무게는 철의 질량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들의 무게다. 그리고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카르딘 블랙실드. 너는 더 이상 길드의 일원이 아니다.”
길드장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 안에 있던 모험가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동정도 없고, 분노도 없었다. 오직 경멸과 혐오만이 그들의 눈에 담겨 있었다.
“귀를 막고 싸우다니. 너 때문에 파티가 전멸했어.”
“방패 기사라며? 방패는 동료를 지키는 거 아니었어?”
“혼자 살아남은 게 자랑이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청각 속에 살아 있었다. 던전의 메아리, 동료들의 비명,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침묵. 모두가 죽고 난 뒤, 던전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버린 방패
나는 방패 기사다. 그것도 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의 방패 "에이기스"의 전승자다. 하지만 나는 귀를 막고 싸웠다. 청각이 마비되는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유일한 감각을 버렸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파티의 전멸. 그리고 나만 살아남았다. 그것이 죄였다.
길드에서 추방된 후, 나는 외딴 마을로 향했다. 엘세리아 대륙의 남쪽 끝, 모험가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곳. 이곳에서 나는 방패를 봉인하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어디서나 같았다.
“저 사람… 그 방패 기사 아니야?”
“혼자 살아남은 그 인간?”
“쓸모없는 전설이지. 전설은커녕, 재앙이었어.”
나는 그 말들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소리들이었다. 청각이 예민한 나에게, 그들의 속삭임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을 감내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라 믿었으니까.
어느 날, 마을 광장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맑고 고요한 음률. 마치 바람이 숲을 스치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무심코 발걸음을 멈췄다. 그 노랫소리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충동질했다. 노래의 출처는 광장 한복판에 서 있는 소녀였다. 성직자 복장을 한 그녀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냉소적이었다.
“또 노래야? 힐러라며, 회복은 못 하고 노래만 부르네.”
“챈트? 그게 뭐야. 그냥 노래잖아.”
“쓸모없는 힐러네. 방패 기사랑 잘 어울리겠다.”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쓸모없는 힐러.'
'쓸모없는 방패 기사.'
그녀와 나는, 같은 낙인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떠올렸다. 이상했다. 그 노래를 들을 때, 내 청각은 고요해졌다. 던전의 에코처럼 날카롭고 혼란스러운 소리들이 사라지고, 마치 정제된 음률만이 내 신경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나를 진정시켰다.
며칠 후, 나는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여전히 손가락질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노래… 챈트라고 했지?”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신의 목소리를 부르는 기술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요.”
“나는 들었어.”
그녀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나는 방패를 들던 팔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봉인해 둔 그것은, 여전히 무겁고 침묵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그 침묵을 흔들었다.
“내 청각은... 조금 특별해. 너의 노래 속에 숨겨진 마법을 느낄 수 있어.”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함께 던전에 들어가 줄 수 있어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던전
그곳은 나에게 공포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그 공포를 잠재울지도 몰랐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날 밤, 나는 방패를 꺼냈다. 에이기스는 아직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쓸모없는 방패 기사와, 노래밖에 못하는 힐러. 우리는 그렇게, 전설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 하하하 새로운 소설을 시작해 봅니다. 예전부터 구상하던 판타지 소설인데요. 선택된 자라며 칭송받던 인물이지만 한 가지씩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그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좌절한 이들이 어떻게 시너지를 내는지를 그릴 예정입니다. 아~ 재밌어야 할 텐데... 요즘 N포를 넘어서 칩거에 빠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는 소설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상 거창하게 작가의 시작하는 말이었습니다. 크크크 역시나 연재는 힘들고 한편씩 완성될 때마다 매거진에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