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도 나를 묻고 있구나 (9)
To. 존재감 뿜뿜을 바라던 소인배
안녕? 오늘은 떠난 다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 물 위를 동동 떠다니다 보면 섬 같이 너와 비슷한 기름이 모인 곳이 먼저 눈에 뜨일 거야. 그리고 서로를 알아본 기름들은 강하게 끌어당기지. 하지만 막상 섞이고 나면, 그냥 역시 하나의 기름덩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아.
알겠니? 떠났으면 숨죽여라.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존재감을 줄이는 자에게 오히려 더 큰 개성을 부여한다. '독야청청하리라'라는 시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옷을 잘 입는 법은 몸보다 옷이 돋보이게 하는 것이고, 노래를 잘하는 법은 목소리보다 멜로디와 가사가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춤을 잘 추는 법은 유튜브 쇼츠에서 본 건데... 아이돌과 댄서의 관점 차이였던가? 아이돌은 "이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봐."가 주목적이고, 댄서는 "내가 추고 있는 이 '춤'을 봐."라지?
너는 떠나서도 '떠난 너'라는 존재감을 뿜뿜 하려는 얄팍한 생각으로 글이라는 것에 접근했다. 이 세상에 유전자 대신 문자를 남기겠다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채... 존재감 뿜뿜하고 싶다는 소인배의 의식을 숨기고 동냥하듯 관심을 구걸하고 다녔다. 글을 잘 쓰는 법? 그런 건 없어. 이것을 달리 표현할 적당한 방법이 없어서. 다 운이라고 퉁치는 거야. 그야말로 얼버무리는 거지. 운도 실력이라면서...
나는 이제 내 개성에 사는 세상을 졸업한다. 아이러니하게 어설프게 달려든 글쓰기를 계속하다 보니 알아버렸어. 앤디 워홀이 이해되었다고 하자. 그는 기행적인 예술과 외모로 세상에 드러나면서도, 말을 줄이고 두문불출하며 존재감을 지워갔다. 흔히 신비주의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침묵이야말로 더 큰 목소리였음을...
젊은 날에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을 멋없다고 여겼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찐따 같다고 생각했어. 요즘 말로 플렉스라고 하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숙이는 것이야말로 성숙의 자연스러운 법칙임을... 자유를 택했지만, 연어가 회귀하듯 다시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모순이 많다. 그렇지?
그러나 그 모순 속에서 나는 관찰자가 된다. 드러내지 않고, 빛나지 않고,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간다.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목소리가 울린다. 그렇게 시선을 확장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가려고... 진짜 재밌는 삶이다. 철학자라는 자격증 같은 이상한 호칭도 필요 없어...
From. 숨죽인 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