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홍 Feb 06. 2024

장례식장 갈 때 나만 선글라스 껴?

송자까의 삐딱하게 ④

“얀마, 쌍꺼풀 수술했냐?” 


안다. 건방 떨지 말고 선글라스 벗으란 얘기란 걸. 살며 비슷한 소릴 얼마나 많이 들었게. 그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선글라스 낄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사정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선글라스를 벗을 수 없어 매우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도대체 이게 뭐람. 선글라스 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정씩이나 설명하고 사죄씩이나 해야 하느냔 말이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놈


난 공익 출신이다. 누구보다 현역을 바랐다. 진심이다. 꿈이 직업군인이었다. 신체검사 1등급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이없게 4등급 받았다. 그래서 공익으로 갔다. 어쩌다 군대 얘기 나올 때면 늘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 저는 공익 출신이어서요. 하하하.”


그러면 다들 놀란다. 네가 도대체 왜 공익이냐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봐도 난 멀쩡하다. 멀쩡한 수준을 넘어 우월한 쪽에 가깝다. 잠시 내 스펙을 소개하자면, 우선 키가 183cm이다. 몸무게는 거의 20년째 73kg이다.(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자랑이 되는 마법이란.) 학창시절엔 유도를 몇 년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기초 근력과 지구력이 제법 좋다. 직업군인 준비하던 20살엔 1,500m를 6분 10초대에 돌파했다. 윗몸일으키기는 1분에 70개 이상했다. 현재는 고강도 육체노동의 끝판왕인 ‘형틀목수’로 6년째 재직 중이다. 그런 사람이 공익 출신이라니까 믿지 못하는 거다. 


모든 건 다 눈 때문이다. 내가 공익 간 이유도, 직업군인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선글라스 끼고 다니는 이유도 모두 이놈의 ‘눈’ 때문이다. 시력이 형편없다. 그냥 형편없는 게 아니라 매우 형편없다. –8.5디옵터 고도근시다. 맞다. 흔히 말하는 ‘마이너스’ 시력이다. 교정시력(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했을 때 시력)도 겨우 0.6이다. 수치만 말해선 감이 안 올 테니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난 평소 늘 렌즈 끼고 다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렌즈부터 뺀다. 다음이 문제다. 안경 끼려고 하는데 늘 있어야 할 곳에 안경이 없다? 여기저기 손을 더듬어보지만 찾을 수 없다. 결국, ①뺏던 렌즈 다시 끼고 ②안경 찾아다 놓은 후에 ③다시 렌즈 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도 렌즈 끼는 거다. 그래야 화장실 찾아갈 수 있고, 비누 집어 들어 세수를 할 수 있으며, 칫솔에 치약을 바를 수 있다. 한마디로 안경이나 렌즈 안 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다.  


내 경우는 근시뿐 아니라 난시도 심각한 수준이다. 다시 직업군인 준비하던 20살로 가보자. 망할 눈 때문에 신체검사 4등급 받고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역에서 제일 큰 안과에 방문했다. 라식 수술 받아서라도 군대 가겠다는 각오였다. 생각지도 않게 부적격 판정 받았다. 거의 20년 전 얘기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당시 의사는 “오랜 렌즈 착용으로 각막 손상이 심한 데다가, 시력이 매우 안 좋아 그에 맞게 각막을 깎자면 실명 위험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위험 감수하면서까지 수술하고 싶지 않으니, 정 수술하고 싶으면 다른 병원 알아보라.”고 덧붙였다. 그 뒤로도 매일 8시간 이상 렌즈 끼고 살았으니, 내 각막 상태를 더 말할 필욘 없겠다.      



저 미친놈비 오는 날 웬 선글라스?


그래서 난 하늘을 못 본다. 내가 말하고 내가 슬프다. 하늘을 볼 수 없다니……. 눈부심과 빛 번짐이 말도 못 할 정도다. 화창한 날엔 가만히만 서 있어도(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여기에 더해, 나에겐 공포가 하나 있다. 이렇게 점점 눈이 나빠지다가 끝끝내 시각 장애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앞이 깜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여, 눈에 관해선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구는 편이다. 차라리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한 대 맞으라면 맞을지언정, 눈에 미세한 이물질 하나만 들어가도 난리법석을 떤다. 


본인. 거의 대부분 선글라스 낀 사진이다.


그런 까닭에 365일, 사시사철, 장소불문, 선글라스를 낀다. 그래야 눈도 편하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빛과 이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한다는 안도감이랄까.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도 예외는 아니다. 실내라도 채광이 무척 좋으면(그래서 눈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낀다. 비나 눈이 와도 어지간하면 끼려고 노력한다. 비와 눈에 섞인 수많은 이물질이 사정없이 눈에 들어가는 것보단, ‘저 미친놈, 비 오는 날 웬 선글라스?’ 소리 한 번 듣는 게 차라리 낫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선글라스만큼은 T‧P‧O(time, place, occasion 머리글자로, 옷 입을 때의 기본원칙을 뜻한다.)가 없는 거다. 나에게 선글라스란 글자 그대로 햇빛 가리개이자, 보호안경이다.


그런 나에게, 우리나라는 가혹하다.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에선 유독 선글라스가 건방짐과 거만함, 또는 유별남과 독특함의 대명사다. 고리타분한 유교 문화의 잔재이리라. 그렇다 보니, 일상이 오해다. 처음 언급한 “얀마, 쌍꺼플 수술했냐?”라고 에둘러 말하는 사람은 양반이다. 대놓고 선글라스 벗으라고 하는 사람도 의외로 제법 많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목수 일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됐을까. 오야지가 보기에, 나 일하는 모습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에라이 쉐끼야. 선글라스 안 벗어??!! 어디서 건방지게 선글라스 끼고 똥폼 잡고 앉았어. 겉멋만 들어가지고!!”

“아니, 그게 아니라…….”


현장에서도 항상 선글라스 낀다.


분명히 말하는데 내 망치질이 어설펐던 건, 내가 목수 일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기 때문이지, 선글라스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햇볕 짱짱했던 그날, 내가 만약 선글라스를 안 꼈더라면 아마도 내 망치질은 더 어설펐을 거다. 나는 황당한 마음을 억누르며 오야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행히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지금은? 매우 당연하게도 선글라스 끼고 망치질 잘만 한다.      



그 오지랖과 시선거둘지어다


여하간 피곤한 일이다만, 어쩌랴. 눈알을 뽑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에도 오야지처럼 먼저 말 꺼내주는 게 차라리 속 편하긴 하다. 말 나온 김에 오해 풀 수 있으니까. 대답도 정해져 있다. 


“아, 제가 시력이 엄청 안 좋아서요.” 

“도대체 얼마나 안 좋길래??!!”

“시력 때문에 신체검사 4등급 받아서 공익 갔을 정도예요.”


내 선글라스 지적하는 건 보통 군대 다녀온 아저씨고, 그들에게 위의 대답은 ‘직빵’이다.  


“아~! 그래애~! 미안하다야, 괜히 오해했네~!”


내가 먼저 커밍아웃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도 지속해서 만날 관계인데, 상대방 성격상 먼저 물을 것 같진 않고, 그럴 경우 100% 나에 대한 편견이 생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제가 눈이 많이 안 좋아서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서요. 혹시라도 오해는 안 하셨으면 해서요. 하하하.”

 

그런 경우가 아니면(그러니까 상대가 먼저 묻지 않았고, 내 쪽에서도 딱히 필요성을 못 느껴 얘기 안 한 경우, 실은 대부분이 그런 경우인데) 예외 없이 뒷말을 듣는다. 연예인 병 걸린 놈, 싹수없이 선글라스 끼고 다니는 놈, 튀려고 안달 난 놈 등등으로. 심지어, 거꾸로 사과받은 일도 몇 번이나 있었다. 


“아휴, 사실 나는 주홍 씨가 쪼금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렇다는 얘길 몇 번 듣기도 했고. 근데 이렇게 만나서 진득하게 얘기해 보니까 아니었네. 내가 오해했던 거였어. 미안해요. 호호호.” 


물론 나도, 내 선글라스 지적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놈이라고 느꼈던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해 베트남으로 배낭여행 갔을 때다. 사건 장소는 반미 샌드위치 가게였다. 주문한 샌드위치가 나왔다. 접시에서 샌드위치를 집어, 숙였던 고개를 들며 한 입 베어 물려던 찰나였다. 아주 우연의 일치로 내 앞쪽 테이블에서 나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여성에게 시선이 가버렸다. 백인 여성이었고, 추측건대 유럽피언이었던 거 같다. 


왼쪽 베트남에서, 오른쪽 일본에서. 역시 선글라스 낀 모습이다.


노브라였다. 놀랐다. 살며 처음 본 거라, 아마도 낯설었을 거다. 그래서 잠시 당황한 것뿐이고, 하여 놀란 거니까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고백하자면, 나는 다시 한번 ‘몰래’, 그 여성 가슴팍을 봐버렸다. 가게를 나오며,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혐오했는지 모른다. 그저 다를 뿐인데, 기어코 다시 한번 향했던 그 시선에 관해, 그 천박한 호기심과 기민했던 행동에 관해서 말이다. 그나마 안 좋은 눈알을 확 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뒤로 베트남 여행하는 10여 일 내내 노브라 여성을 수도 없이 봤지만, 단연코 두 번째 시선은 보내지 않았다. 


이렇듯,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많은 경우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다를 뿐인데, 틀렸다고 말하면서 기어코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 든다. 혹은 추악한 호기심으로 상대를 관찰하려 든다. 이 얼마나 무례하고 폭력적인가. 남이야 선글라스를 끼든가 말든가, 브래지어를 차든가 말든가. 


그 오지랖과 시선, 거둘지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