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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홍 Jan 28. 2024

목욕탕에서 나만 때 안 밀어?

송자까의 삐딱하게 ③

“저기……. 죄송한데, 등 좀 한 번 밀어주시겠어요?” 


찜질방을 겸한 목욕탕이었고, 그날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냉탕, 온탕 할 것 없이 꼬맹이와 30~40대(꼬맹이들의 아빠일 것으로 추정되는)가 빼곡했다. 찜질방으로 피서 온 가족이리라. 목욕탕 유리문 여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벗은 옷 다시 입을 순 없는 노릇. 구석에 자리 잡았다. 면도 먼저 하려고 턱과 인중, 그러니까 입술 주변으로 비누 거품을 듬뿍 발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흡사 KFC 할아버지 같았다. 날이 바짝 선 면도기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나보다 10살쯤은 어려 보이는, 아마도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쭈뼛쭈뼛 걸어왔다. 이윽고 위에 같이 말했던 거다.     





거절을 거절한다                    


얼결에 대답 비슷한 걸 해버렸다. 내가 “예?”라고 했는지, “예~!”라고 했는지, 자문할 틈도 없이 청년은 거의 90도로 고개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는, 고갤 들면서 내 손에 이태리타월을 쥐여줬다. 매우 자연스럽고 숙련된 연속동작이었다. 혹시 모를 나의 거절을 거절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하여, 거절할 수 없었다. 



어느새 난 이태리타월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청년이 ‘20대 중후반쯤 되겠거니’ 생각한 것도 그 직후였다. 그만큼 모든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입가에 비누거품을 듬뿍 바른 상태 그대로, 생판 처음 보는 청년 등짝을 열심히 밀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목덜미부터 시작해 어깨에서 이두와 삼두근으로, 다시 올라와 어깻죽지에서 활배근으로, 이어 척추를 중심으로 등판 전체를 누빈 후 옆구리와 엉덩이골 근처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밀었다. 


땀인지 물인지(혹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얼굴에 송골송골 맺힐 즈음, 작업이 끝났다. 샤워기 틀어 물 온도를 세심하게 체크한 후, 청년 등짝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훑어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등짝을 바라보며,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던가. 청년은 다시 한번 90도 가까이 고갤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제야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백하자면 처음이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남의 등짝을 밀어보지 않았다. 물론, 학창 시절 친구들 등짝을 몇 번쯤 밀어봤다. 그보다 어릴 땐 아빠와 형 등짝도 종종 밀어주긴 했다. 그렇지만 이름도 성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완전한 남’의 등짝을 밀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거울을 봤다. 비누거품은 녹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다시 입가에 비누거품 바르고 면도를 하며, 좀 전 ‘사건’을 복기했다. 곱씹을수록 낯설면서도 묘한 기분이 일었다. 그래, 이 맛에 목욕탕 오지.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건 꼬추 크기뿐 


자랑할 건 아니지만, 나는 제법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놈으로 통한다. 불의를 보면 대체로 참지 못하고 바른말을 곧잘 하는 데다가, 지위 고하 막론하고 할 말은 해야 직성 풀리는 성깔이어서다. 한마디로 ‘또라이’다. 마초들의 정글인 노가다판에서도(직업이 목수다.) 그 성깔은 변함없다. 한 번은 내가 속한 목수팀 오야지가 나를 따로 불러 “주홍아, 나도 네가 때때로 조심스럽거든? 그러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어렵겄냐? 가끔 보면 너는 너무 뾰족해. 성질 조금만 죽여~! 내가 이렇게 부탁하마.”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나다. 청년 등짝을 밀어주고 나서, 기분이 퍽 좋았던 것도 그래서다. 내가 ‘또라이’인지 뭔지 청년으로선 알 길 없다. 청년 입장에서 보자면 난 그저 구석에 쪼그려 앉아 면도하려던 아저씨1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꼬맹이 없이 혼자 온 아저씨1. 그리하여 청년은 편견 없이 부탁했고, 난 조건 없이 수락했다.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청년과 난 맨몸으로 만나, 서로의 땀과 때를 나눴다. 이 얼마나 담백하냔 말이다. 



정혜덕 작가는 『아무튼, 목욕탕』(2020, 위고)에서 “맨몸으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사회적 지위나 소유의 많고 적음 따위는 수증기처럼 흩어진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렇다. 목욕탕엔 편견도 없고, 조건도 없고, 무엇보다 계급이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목욕탕에선 그저 뱃살 늘어진 아저씨2다. 재벌 막내아들도 목욕탕에선 아저씨3에 지나지 않는다. 목욕탕 유리문 안으로 비싼 외제 차 끌고 들어올 수도 없는 거고, 명품 양복이나 시계도 탈의실에 벗어놔야 한다. 사회적 명성과 권위, 직업이나 재산 그 어떤 것도 목욕탕 안에선 알 수 없다. 우리가 목욕탕에서 과시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봐야 고작 꼬추 크기 정도인 거다.      



묵은 때 대신 묵은 고민 안고


목욕탕의 ‘계급 없음’은 스스로에게도 유효하다. 내가 목욕탕에 다니는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다. 나 자신을 계급 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와 가족과 애인과 친구들이 나에게 기대하는(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가짜 내 모습 말고, 내가 진짜로 원했던 나와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 


자기 객관화일 수도 있고, 자기 고백일 수도 있고, 어쨌든 목욕탕에서 도를 닦기 시작한 건 바야흐로 18살 때부터다. 당시 난 결석을 밥 먹듯 하는 ‘불량 학생’이었다. 물론, 집에서는 학교 다녀온다고 나왔지만 말이다. 그 아침에 교복 입고 갈 수 있는 데가 목욕탕뿐이었다. 교복 입은 학생이 오전에 거리를 배회하는 건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그 눈초리를 견딜 수 없었다. 학교 가기 싫은 날은 뒤도 안 보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회사 대신 몬탁행 열차에 몸을 싣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주인공처럼. 그 당시 난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내 안에서, 반항심과 의무감이 시시각각 싸웠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과 뭐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이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했다. 그러다 심연에서 소용돌이가 몰려오는 날, 학교 대신 목욕탕으로 갔다.  



평일 오전 목욕탕은 언제나 조용했다. 그럼에도 탈의실에 들어가면 교복부터 벗어젖혔다. 그때부터 난 학생이 아니었다. 탕 안에도 사람 없긴 마찬가지. 대충 샤워하고 나면 온탕으로 들어가 턱 밑까지 몸을 우겨넣었다. 그렇게 맨몸으로 앉아, 어떻게든 나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고 또 물었다. 대부분은 쓸데없는 고민과 생각의 되풀이였고, 무의미한 후회와 다짐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그러고 나면 달뜬 마음이 다소간 가라앉았다.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한다. 온통 회색뿐이었던 시절 말이다. 돌이켜보면 역시 목욕탕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목욕탕 덕분에 그럭저럭 그 시절을 넘길 수 있었다. 남들 오토바이 타고 본드 불면서 보내는 사춘기, 목욕탕 안에서 물장구치는 것으로 대신했으니 이걸 건전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쨌거나 오늘도 난 묵은 때 대신, 묵은 고민 안고 목욕탕으로 향한다. 



번외목욕탕의 세 부류(한국식과 일본식, 그리고 핀란드식)


엄마 손 잡고 여탕 다니던 시절은 차치하고, 목욕탕과 친구 먹은 18살 때부터만 따져도 20년이다. 그 세월 동안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많으면 대여섯 번씩 목욕탕에 갔다. 남들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아등바등하는 수능 전날에도 난 목욕탕으로 향했다. 성실했던 수험생이 아니었으므로, 이제와 내가 의지할 거라곤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알라신이든 기도와 정성 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러자면 목욕재계가 필요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택시 잡아타고 유성 온천에 갔다.(대전 사람에게 유성 온천은 그저 옆 동네 목욕탕이다.) 결과적으로 기도와 정성이 부족했던 거 같지만. 여하간 지난 20년간 내 집 드나들 듯 유성 온천을 다녔으며, 인근 온양 온천은 또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른다. 심지어 작년엔 일본 온천까지 접수했다. 


그런 내가(=프로목욕러) 분석하기에, 목욕탕 애용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한국식과 일본식, 그리고 핀란드식. 먼저, 한국식은 당연히 때다. 탕이든 사우나든, 혹은 탕과 사우나를 오가든, 목욕탕 안에서의 모든 행위와 노력이 때로 귀결되는 부류다. 이들은 때의 많고 적음으로 그날의 컨디션과 성패를 결정한다. 우리나라 목욕탕에서 가장 많은 부류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본식.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태리타월을 챙기지 않는다. 연례행사처럼 때를 밀 때도 있지만, 보통은 온탕과 열탕, 때때로 냉탕까지 오가며 몸을 데우고 식히는 데 집중한다. 굳이 말하자면 혈액순환과 피부 보습에 역점을 두는 부류랄까. 


나 또한 여기에 해당한다. 안 믿겠지만, 목욕탕 다닌 20년간 때 밀어본 게 다섯 번이나 될까. 목욕관리사에게 내 몸 맡겨본 경험은 아예 없다. 기본적으로 피부가 예민한 데다가 건성이다. 때 밀면 시원하다기보단, 아프고 따갑기만 하다. 하여, 목욕탕 가면 면도하고 온몸 구석구석 깨끗이(평소보다) 씻는데 30분, 온탕과 열탕 오가며 도 닦는데 30분, 선베드 낮잠 30분, 마무리 30분으로 끝낸다. 



마지막 핀란드식. 안애경 작가는 『핀란드 디지인 산책』(2009, ㈜백도씨)에서 “사우나에 대한 언급 없이 핀란드 사람을 이야기할 수 없고 사우나 없이 핀란드란 나라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은 핀란드 사람 스스로 하는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마지막 부류는 주로 모래시계와 싸우러 오는 이들이다. 탕엔 관심 없고, 오직 습식과 건식 사우나를 오가며 땀과 노폐물 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모래시계를 몇 번 뒤집었냐, 그리하여 땀을 얼마나 뽑았냐로 자신의 젊음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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