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연재하는 글을 옮깁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여우, 토끼, 얼룩소가 한 마리씩 나란히 앉아 있다. 눈을 ‘꿈뻑꿈뻑’ 하면서 종일 날 쳐다본다. 처음엔 그 시선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람인지라 8시간 내내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깐 SNS에 들어가 딴짓도 하고, 기사를 찾아보기도 한다. 또 지금처럼 마감에 쫓길 때면 몰래(?) 글을 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여우와 토끼와 얼룩소를 의식하게 된다. 어쩌겠나. 내가 자초한 것을!
위에서 얘기한 ‘동물 트리오’는 우리 부서 재택 근무자들이다. 여우랑 토끼는 중국에 살고, 얼룩소는 출퇴근하기 어려운 타 지역에 산다. 처음 입사했을 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날 제외하고 6명이라던 마케팅본부엔 3명만 앉아 있었다. 다른 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입사하기 전, 대표는 분명 전 직원이 00명이라고 했다. 막상 출근해 보니 한참 부족했다. 나머지 직원은 어딨냐는 물음에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재택근무자”라고 답했다. 황당한 마음에 “아니, 얼굴도 안 보고 어떻게 일을 해요?”라고 재차 묻자, 대표는 촌스럽게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아휴, 본부장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걸 따져요.”라고 받아쳤다.
그랬다. 공사판에서 망치질하는 사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그 이전, 그러니까 약 10년 전 기자로 일했다. 사무실보단 취재 현장에서 시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특별한 일 없으면 우선 사무실로 출근했다. 저녁 때도 마찬가지였다. 취재 현장에 나가 있다가도, 어지간하면 사무실 들러 편집장한테 보고하고 퇴근했다. 그게 효율적이냐 비효율적이냐 따지는 건 요즘 시선이고, 그땐 그게 그냥 당연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재택근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 시절 회사 다녔던 사람에게 ‘재택근무자’와의 소통은 그 자체로 난감이었다. 더욱이, 난 글쟁이다. 글자라는 걸 오랜 시간 씹고 뜯었다. 그래서 잘 안다. 글자엔 온도도 없고, 냄새도 없고, 무엇보다도 표정이 없다는 걸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여전히 문자보단 전화를, 전화보단 만나서 말하는 걸 선호한다. 번거롭지만, 그게 오해를 안 만든다.
그러니 입사해 바쁜 건 내가 아니라, 휴대전화였다. 사내 메신저는 한계가 명확하다. 난 업무를 ‘지시’하는 본부장이고, 재택근무자들은 내가 지시한 업무를 ‘이행’해야 하는 사원이다.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강압적이거나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관계다. 상대방 얼굴 바라보면서, 간절한 눈빛으로, 두 손 모아가며 “이것 좀 오늘까지 꼭 해주세요.” 하고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것과 메신저로 “이것 좀 오늘까지 꼭 해주세요.” 하고 툭 던지는 건 ‘러닝셔츠’와 ‘난닝구’만큼이나 맥락 차이가 크다.
그래서 되도록 전화로 소통했다. 표정과 제스처까지 보일 순 없겠으나, 목소리에 담긴 온도만이라도 전달되길 바랐다.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전화로 업무 지시하다 보니 직원 간 공유도 안 될뿐더러, 전화통 붙들다 보면 정작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A와 통화했다가, 그 내용을 다시 B에게 전화해 전달하고, 그렇게 결정한 내용을 다시 A에게 전화해 소통하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입사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마케팅본부 직원들에게 선언했다. 오늘부터 본부장인 날 포함해 재택근무자들은 화상 채팅방으로 출근해 함께 모여 업무한다. 사생활이 있으니, 뒷배경 가리든, 아바타 설정하든, 거기까지는 오케이다. 그럼에도 카메라는 켜자. 그게 설령 아바타일지언정 우리 얼굴 보면서 일하자. 그날부터 여우와 토끼, 얼룩소와 함께하게 된 거다. 다소 권위적일 수 있는 조치였으나, ‘동물 트리오’는 큰 반발 없이 이해해 줬고,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업무 효율은 물론이고, 화상 채팅방이나마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 내 소원은 늘 고생하는 ‘동물 트리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거다. 그들이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