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연재하는 글을 옮깁니다.
자정이 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년도 지난 일인데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마감주였다. 매일 취재하고 마감하는 일간지 기자라고 왜 고충이 없겠냐만, 월간지 기자가 마감주에 감당해야 하는 압박이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월간지는 독자와의 약속이다. 편집과 교정·교열, 인쇄와 발송 등을 고려해 늦어도 셋째 주 일요일까진 모든 기사를 마감해야 했다. 여름방학 끝자락에 한 달 치 일기 억지로 쓰는 아이처럼 우린 초조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이 무뎌질 정도로 지쳐있었다. 지침의 정도로 보아 셋째 주 목요일이나 금요일이었던 거 같다.
커피 한잔 마시자는 팀장 말에 기자들이 둘러앉았다.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선배 하나가 ‘툭’ 울음을 터트렸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좋아 기자 됐는데 매번 마감에 쫓겨 밀린 설거지하듯 후다닥 기사를 던지고, 읽고 싶어 사다 놓은 책은 쌓여가는데 당장 기사 쓰자니 온갖 자료와 논문 같은 휘발성 활자에 파묻혀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며, 선배는 한참 넋두리했다. 같은 마음이었다. 울렁이는 목울대를 가만히 눌렀다.
과연 그랬다. 세상만사 그렇듯 활자 또한 총량의 법칙을 따른다. 그 시절 우리의 활자 총량은 이미 ‘만땅’이었다. 다만 일기라도 몇 자 끄적이고, 추리소설이라도 한 권 읽자면 그만큼의 활자를 씹고 소화하고 배설할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었다. 근데 우린 이미 너무 많은 활자를 읽고 또 쓰고 있었다. 그러니 울음이 툭 터질 수밖에. 아이러니한 말 같지만, 우린 읽고 싶었고, 또 쓰고 싶었으니까.
어쩌다 글을 쓰게 됐느냐고, 종종 물어온다. 공익근무요원 때다. 운 좋게 자그마한 학교로 배정받았다. 선임도 후임도 없었고, 무엇보다 할 일이 없었다. 출근해 한두 시간 루틴 같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자유였다. 퇴근 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26개월 동안 도서관을 절반쯤 훑어냈다. 다시 총량의 법칙으로 설명하자면 그 당시 내 활자 총량은 거의 ‘엥꼬’ 수준이었다. 그러니 읽는 족족 몸 구석구석으로 흡수됐다. 그때 처음 글 써서 먹고사는 삶을 고민했다.
기자 관둘 때 딱 하나 미련이 좀 남았다. 결국 책 한 권 못 내보고 끝나는구나. 그럴듯한 기획 기사 시리즈로 써서 책으로 엮어보고 싶었다. 그럴만한 역량도 없었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소원 푼 게 또 아이러니하게도 목수로 일하면서다. 밥 배불리 먹어도 디저트 먹을 배 따로 있듯 몸뚱이는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만 읽고 싶고 쓰고 싶었다. 매일 읽고 썼다. 그 사이 책을 두 권 냈다. 세 번째 책까지 탈고했다.(올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작년 5월, 다시 회사 생활 시작했다. 기자 출신이 뭐 대수라고. 회사에서 내보내는 보도자료 포함해, 공식 문서 상당수가 내 손을 거치게 된다. 그뿐이랴. 하루에도 수많은 기획안과 보고서, 계획서가 내 결제를 기다린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물잔처럼 활자 총량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요즘이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같은 목표를 세운다. 이른바 ‘50권 읽기 프로젝트’다. 1년에 50권 읽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이게 또 생각보다 쉽지 않다. 1년이면 52주다. 매주 한 권씩 꼬박꼬박 읽어야 한다. 나처럼 책 느리게 읽는 사람은 매일 꾸준하게 30분 이상 읽어야 달성할 수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작년엔 그 절반도 못 읽었다. 작가로서도 작년엔 낙제점이었다. 목수로 일할 때 서너 곳에 연재했다. 출판 염두에 두고 개인적으로 쓰던 원고도 여럿 있었다. 출판은커녕 연재 원고도 소화 못 해 정리했다. 이곳 하나 겨우 남았다.
구구절절 떠들었지만, 사실 다 핑계다. 활자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면 씹어 삼켜버리면 될 일이다. 읽고 싶고, 쓰고 싶어서 울던 밤을 다시 기억해 본다. 삶의 어떤 순간도 미련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다시 읽고 쓴다. 작가는 글을 써야 비로소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