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폰이 갤럭시 노트 FE, 즉, 안드로이드였기 때문에 Camino pilgrim – Camino Frances이라는 앱을 받아서 일정을 짤 수 있었다. 이 앱을 통해서, 1) 최종 목적지까지의 세부일정 계획 2) 하루에 이동해야 할 거리 및 고저차에 따른 난이도 예상 3) 다음 마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아이템들(식사/급수/마켓/화장실 등) 예상 4) 기본 루트에서 벗어나 있는지의 여부 등을 알 수 있어서 까미노 앱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앱이라고 생각되고 아이폰 유저라면 주변 지인의 안 쓰는 안드로이드 폰을 빌려서 앱만이라도 깔아서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안드로이드 용으로만 개발이 되어있다.)
까미노 - 프랑스길의 총거리는 799km로, 하루에 20km 정도씩 걷는다면 약 40일 정도를 계획하게 되는 일정이다. 그렇지만 나는 기준 거리를 약 30km/1일로 잡고 약 계획을 세웠는데 1) 일정이 여유롭지 않았고 2) 내가 평소 걷는 속도 및 하프 마라톤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에 20km ( = 4-5시간)만 걷는다고 하면 1시 전에 마치는 순례길에서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내가 계획했던 일정표는 다음과 같다.
앱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30일 일정을 바탕으로 재배치하면 된다. 이때 고려해야 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개인적으로 멈추고 싶은 도시 –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일정 중간에 지나는 것이 아닌, 그 도시에서 일정을 마치는 것으로 계획했다. 일정 중간에 구경을 하고 가게 되면 그만큼 길 위에 있는 시간이 늦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스페인 소도시는 여전히 Siesta가 있다. 2) 장거리 구간은 일정 초반에 - 메세타 평원을 지나게 되는 경우 약 17km를 중간 보급 및 화장실 없이 지나가야 한다. 오후 12시쯤 지나게 되면 지쳐도 멈춰 설 곳이 없기 때문에 아예 장거리 구간이 하루의 첫 구간이 되도록 배치하여 좀 더 의욕 있을 때 지나도록 했다. (덕분에 메세타 평원을 약 3시간 반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3) 점심을 싸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대략 점심시간쯤 지날 도시에 적어도 카페가 있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12시쯤엔 꼭 먹어야 Siesta시간을 무사히 지날 수 있다. 4) 하루의 최종 종착지가 되는 도시의 숙소 존재 여부를 잘 확인해야 한다. (Camino pilgrim app에는 표시가 없지만 숙소가 있는 도시가 있었고, booking.com 등으로 호스텔이나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도시라면 늦게 도착해도 내 침대가 확보되기 때문에 그 날은 늦게까지 걸어도 괜찮다.) 5) 예상할 수 있는 개인 컨디션을 고려하여 일정을 조정한다 - 월경 기간 동안은 몸이 많이 피곤할 것 같아 그 기간 중에는 이동 거리를 좀 짧게 잡았다. 6) 초반 일주일은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익숙지 않으므로 20km도 버겁지만, 후반 일주일은 몸이 익숙해져서 배낭을 메고도 40km도 어렵지 않았다. 초반 일주일을 거리를 짧게 잡는 것이 좀 더 실현 가능한 계획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일정이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초반에는 마음과는 달리 발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예상했던 거리보다 짧게 걸은 날이 있고, 월경 예정일과는 다른 날에 하게 되면서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고, 특히 마지막 열흘 정도는 걷는데 몸도 많이 익숙해지고 일요일 전에 바르셀로나로 가서 교회도 가고 (가톨릭 성당은 많지만 개신교 교회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온라인 주일예배도 볼 수 없었다.) FC 바르셀로나 축구경기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좀 더 일정을 타이트하게 조정했다. 최종적으로 걸은 일정표는 다음과 같다.
2. 까미노에 가져갈 짐 싸기
카미노에 지고 가는 무게는 삶의 무게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게를 줄이기에 최선을 다한다. 짐을 줄이던 와중에 하루의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노트북 없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 노트북이 없으면 불안한 마음에 (전공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 직업병이다) 아이패드라도 들고 갈까 고민을 해보았다. 역시 빼야 하나 싶었지만, 네이버 카페에서 어떤 분이 댓글로 달아주신, “원하는 물건을 다른데 놔두고 조금 가볍게 걷는 길이, 원하는 물건과 동행하는 조금 무거운 길 보다 즐겁겠느냐”라는 말에 사진작가가 DSLR을 놓고 갈 수 없듯, 컴퓨터 쟁이가 컴퓨터를 놓고 어딜 가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현실 타협을 해서, 갤노트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가기로 했고, 꽤 괜찮은 조합이었다. 그리고 외국 여행자들 중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와서 남는 시간에 뭔가를 쓰는 사람은 종종 볼 수 있었고 커다란 애착 인형을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개인적인 품목 외에, 필수로 지고 가야 할 것 같아 배낭에 넣었던 물건들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 현지에서 추가 구입했던 것들은 근육통 완화 크림, 무릎보호대(원래 벨트형으로 샀다가 착용이 불편해서 찍찍이로 다시 삼), 베드 벅 스프레이, 반창고, 메디폼 두꺼운 것, 거즈, 반다나(앞머리 내려올 때 유용), 립밤, 호스 달린 물통 (걸으면서 바로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페트병이 생각보다 꺼내기 불편함). 기념품은 생장에서 배낭에 메고 다닐 조가비 하나, 각 도시에서 엽서 (일기를 엽서에 씀), 나머지 순례길 기념품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서 사려고 그냥 다 패스했는데 정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다 있음. 그리고 이건 2019년 5월에 갈 때 가져간 것이지만, 발 아치 보정 패드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등산화가 바닥이 편평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장거리를 걸으면 발바닥이 많이 아픔. 나중엔 아예 발바닥 패드를 구해서 끼우고 갔더니 장거리를 걸어도 상당히 발이 편했다. (친구 빌려준다고 하루 뺐더니 바로 또 아픔 ㅠㅠ)
3. 짐 싸는 법
우선 내가 제일 처음 쌌던 배낭의 모양새를 보자.
저렇게 침낭을 밖에 달고 다니면 덜렁거리면서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몸에서도 멀어져 훨씬 더 많은 힘이 든다. 가능하면 배낭 안에 넣어서 쌀 수 있도록 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처음 며칠은 짐을 싸고 푸는데만 시간이 꽤 들었는데, 나중에는 꽤 요령이 생겼다.
우선 가방에 있는 주머니를 잘 파악해 놓고 배분해서 넣는 것이 좋은데, 1. 배낭 헤드 : 자주 꺼내야 하는 물건들을 넣은 크로스백 (여권, 순례자 여권, 잠언, 부채) 2. 허리 벨트 1 : 동전 지갑, 안경 닦이, 썬스틱, 립밤, 캔디 몇 개 3, 허리 벨트 2 : 핸드폰 4. 배낭 앞 주머니 : 바람막이, 물 주머니 5. 배낭 내부 : 옷, 스포츠 테이핑, 자주 안 쓰는 것들 밑으로 (그래서 6번의 미니팩을 준비해서 위쪽에 따로 놓는 것이 좋다), 그 위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그 위에 침낭, 제일 위에 스포츠 샌들. 침낭은 침대 위에 계속 펴놓고 있게 되므로 제일 처음 꺼내서 펴고, 제일 나중에 접어 넣게 돼서 꺼내기 쉬워야 편함. 샌들은 걷다가 숙소 들어가서 바로 갈아 신을 수 있게 제일 위에 있는 것이 좋음. 걷다가 정 뭐하면 배낭에서 바로 꺼내서 등산화랑 바꿔 신을 수도 있고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음.
다른 사람들은 몇 달 동안 꾸리는 짐을 3일 만에 싸서 들고 나왔지만 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겠지라는 생각으로 출발! 짐 무게는 공항에서 7.5킬로였으니 면세점에서 산거 합치면 9킬로 조금 안되었을 것이다.
(2018년 8월의 기록 : 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들고 왔지만 어떤 아이들은 내려놓고 와도 됐을지, 20일 후가 기대된다. Buen Cami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