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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동뱀딸기 Mar 07. 2024

눈 덮인 오지에 사는 행복한 견공

아버지는 종종 견공과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신다.

어제 막 받은 사진인데 3월에도 눈이 쌓인 강원도 풍경이 어처구니가 없고, 너무나 신나 보이는 견공의 모습에 배알이 꼬였다.

무로 한창 골머리 썩던 중 받은 사진이라 그랬을 것이다.


강원도 오지생활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행히 택배는 재깍재깍 오고, 회사에선 돈이 따박따박 나와 대출금을 갚을 수 있게 해 준다.

그 간 계약직으로 떠돌며 한 푼도 모으지 못했었는데, 이 회사는 기숙사도 주고 밥도 주는 곳이니 그저 감사하다.

공기가 좋고 언제나 푸른 하늘이 보인다는 것도 만족스럽다.


다만 조금 힘든 건 자차 없는 뚜벅이는 어딜 쉽게 나설 수 없다는 것과 집 근처에 소규모의 마트조차 없다는 것, 그리고 관광지라 물가가 비싸다는 점이다.


최악인 부분은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원이 없고 의료진의 의료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냥 이승을 떠나야 한다.

둘째, 북극곰과 장거리연애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 평생 주말부부까지 할지도 모른다. 내 직종은 이직이 쉬운 편이긴 해서 나중에 회사를 옮길지도 모르지만, 현재 회사보다 레벨을 높여서 이직하겠다고 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는 말이 힘을 잃는다.



여하튼 젊은 나야 미래를 생각하면 따지고 들 게 많지만,

부모님은 그런대로 제법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특히 부모님 집에서 온종일 골골거리며 잠자는 고양이 두 마리와 아버지 껌딱지인 견공 한 마리는 집짐승치곤 상급의 삶을 누리고 있다.


견공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버지와 함께 매일 아침, 오후, 저녁 최소 3번 산책을 한다.

산책장소는 주로 산이다

사람이 없는 임도로 들어가 멧돼지나 노루의 흔적을 구경하며 걷곤 한다.

그래서일까? 태백에 오고나서부터 견공의 잠꼬대가 발전했다. 으르렁거리며 다리를 움찔거리는데 영락없이 뭔가를 사냥하러 달려가는 모습이다.


올해로 12살이 되는 견공은 이제 턱의 털이 점점 희끗해지고 있다.

그래도 눈밭에선 철부지 강아지이고, 아버지의 재롱둥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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