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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동뱀딸기 Mar 08. 2024

내 동생 김양과 이미키

외동으로 컸던 나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랑 자주 놀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고양이를 너무 키우고 싶었는데, 딱히 고양이를 사 올 곳도 없었고 하니 길냥이에게 삶은 계란을 갖다 주며 야옹야옹 따라 울어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18살 여름, 첫 고양이를 키우게 된다.


그날은 말복날이었다.

바로 앞 집인 할머니 댁에서 백숙을 먹고, 사촌동생들과 산책을 나서는데 할머니 밭 아래에서 눈도 못 뜬 새끼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얼마나 있었는지 아스팔트가 고양이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얼른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고양이를 물티슈로 닦아주고 우유를 손가락에 묻혀 물려주었다.


나는 시내에 나가 고양이모래와 분유, 젖병을 사 왔다.

고양이는 소변은 봤는데 대변은 누질 못해서 계속 엉덩이를 닦아주고 배마사지를 해주었다.


첫 똥은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눴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싸고 나서 탈진해 쓰러지기까지 했다.

똥을 못싸서 배가 빵빵하다

첫 한 달은 아버지가 고생하셨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분유를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도 불효녀였다.

고양이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놀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가끔은 눈을 뜨고 격하게 자서 깜짝깜짝 놀랐다.


야생성이 살아있는 활발한 수코양이인데 정직하게 야옹야옹 울어대서 이름을 양이라고 붙였다.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김 씨 성을 붙여 김양이라 하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과 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김양을 통해 알게 되었다.

김양은 서열싸움을 하느라 나를 자주 공격했고, 나도 화가 나서 입으로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개싸움을 했지만 김양은 아버지한테 호되게 혼날 때면 나에게 와서 숨었고, 내가 힘들 때면 김양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공부를 할 때에도 곁을 지켜준 나의 소중한 동생


후담

1. 아버지는 고양이가 너무 어려서 죽을 줄 알았다고 하셨다.

2. 나중에 알고 보니 밭에 있던 고양이를 할아버지께서 죽으라고 아스팔트에 내려놨다고 한다. 옛날분이셔서 고양이가 작물을 망쳐 싫어하셨다. 김양은 우리 집에 오는 사람 중 할아버지에게만 으르렁거리며 적대감을 표현했다. 할아버지가 밥을 주러 와도 유독 미워하며 안 따랐는데 아무래도 기억을 하는 것 같다.

3. 고양이 수발들기가 힘들어서 분유 공급은 한 달만 하고 바로 불린 사료 이유식을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김양은 소화능력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있는 편이다.

4. 김양은 자기가 우리 집 가족이고 자기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집에서 키우는 둘째 고양이와 개를 천 것 보듯이 할 때가 있다.



김양은 2년간 외동고양이었다가 둘째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질투 많은 첫째가 됐다.

둘째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추석연휴에 시내의 펫샵을 지나가던 중 죽어라 우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서 보니, 펫샵 안에서 개들이 험악하게 짖고 있었고 못생긴 새끼고양이가 박스 안에서 울고 있었다. 그 녀석을 모래값 3만 원을 주고 데려왔다.

어미고양이는 품종묘였는데 가출했다가 임신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고양이 주인이 새끼들 젖을 뗀 뒤, 펫샵에 알아서 팔아달라고 맡겼고 제일 못난 한 마리만 남은 상황이었다.


공황에 빠진듯한 눈빛, 그리고 모두가 잘 때 오독오독 사료먹는 모습

얼굴이 우그러진 냄비처럼 못생기고 하는 짓이 쥐새끼 같아서 이름을 미키라고 붙였다. 그래도 사랑을 주고 정을 붙이니 누구보다 사랑 많은 애착고양이가 됐다.

다만 문제는 애정을 주는 상대가 한 번에 한 명뿐이라는 것.

취직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미키는 나만의 고양이었고, 지금은 제 멋대로 살며 어머니나 아버지 중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가서 친한 척을 하고 있다.


김양은 참 똑똑하고 질투가 많고 예쁘다. 김양과 나는 지금까지도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논다.

미키는 딱 고양이 그 자체이다. 제멋대로고 필요할 때만 애교를 부린다. 어쩐지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 이 씨 성을 붙여 이미키라고 하게 됐다.

김양은 이미키를 많이 때렸지만, 목욕시킬 때 이미키가 울면 달래주는 등 사이가 좋을 땐 좋다.

오래 키우니 그렇게 못생겼던 이미키가 김양을 닮아 예뻐지기도 했다.


지금은 호박집 하나씩 차지하고 각방을 쓰며 사이좋게 지낸다.


여전히 사람 곁에 꼭 붙어 지내는 내 동생 김양


혼자만의 시간이 좋은 이미키


올해로 14살과 12살이 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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