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한 잔의 낭만
낮술. 낮에 마시는 술. 해 지고 먹는 술은 딱히 밤술이라 하지 않지만 날 밝을 때 먹는 술은 '낮'술로, 그 때를 명확히 밝힌다. 낮이든 밤이든 술 성분에 다름이 있으랴. 구태여 낮술이라 별칭을 두는 건 보편적인 음주 시간대가 밤인 탓이다. 서양에서는 카페나 펍에서 점심시간에 가볍게 맥주나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낮술은 이단과 같다. 한 번 마시면 끝을 보는 특유의 음주문화가 반영된 것일까. 낮술을 하면, '그러다 부모도 못 알아본다'거나 '대낮부터 술 퍼 마시냐'는 질타가 날아든다.
우리도 낮술을 즐긴 때가 있다. 농촌의 새참이 그렇다. 한낮 햇빛 아래 들이키는 막걸리 한 잔에, 고단한 노동의 피로는 날아가고 흥이 오른다. 콘크리트 정글 속 우리는 알 길 없는 삶의 쉼표다. 어쩌면 낮술의 향유는 현대인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행위가 아닐까. 거대한 톱니바퀴의 작은 기계 부품처럼 살던 나날 속, 낮술은 퍽 인간적인 게으름을 돌려준다. 꽉 조인 나사를 풀어 일탈의 해방감을 안긴다. 박상천의 시 <낮술 한 잔을 권하다>는 낮술의 이런 멋을 아주 잘 드러낸다.
- 박상천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뜨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싸아'하니 온몸으로 흩어져간다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오늘 낮술 한잔을 권하노니
그대여 두려워 마라
낮술 한 잔에 세상은 환해지고
우리의 허물어진 기억들
그 머언 옛날의 황홀한 사랑까지 다시 찾아오나니
낮술하기 좋은 날이다. 술에 취하고 파란 하늘에 취하는 시간.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에도 취한다. 시계를 본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 기분이 좋다. 적당히 오른 취기. 역동적이어야 할 한낮의 풍광이 느리게 흐른다. 안온한 오후. 비로소 태양에, 태양을 취하는 순간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