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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연구소장 May 19. 2020

엄마품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1. 시작


  너희들이 아빠, 엄마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시점을 현명하게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예전 같으면 결혼을 해야 분가를 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는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라. 말아라.’ 거들어야 할 나이는 아니잖니. ‘알아서들 잘하겠지.’ 하며 믿을 수밖에. 요즘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 일하느라 바쁘지만 짬짬이 연애사업도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 꼭 만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도 여기저기 관심 있게 주위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내아이 둘 키웠지만, 저희들 밥은 알아서 해 먹고 치울 수 있게 제법 잘 키운 엄마 더구나. 그래서인지 엄마는 서운해도 않거니와 그나마 형제가 있으니 서로 도와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살겠지 한다. 배고프면 어쩌겠어? 사 먹기라도 해서 굶어 죽지 말아야지. 나름 무신경 인척 하지만 온갖 것이 신경이 쓰인다. 엄마라서 그렇다.




 엄마는 외할머니 품을 떠나 시집오면서 ‘양념 보따리’ 선물을 받았었다. 결혼 날을 잡아 놓고도 직장이 멀어 출퇴근하기도 바빴었는데, 퇴근 후 집에 오면 마루 한쪽 구석에 갖가지 색과 크기의 플라스틱 통들과 유리병들이 계속 늘어 가는 거야. 몇 개 없었을 때엔 신경 안 쓰고 지나쳤지만, 며칠 뒤 자리를 꽤 차지했을 즈음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어. 가장 큰 통에는 굵은소금이 있었고, 설탕과 가는소금은 약간 작은 통에, 그때 흔하게 썼던 미원, 고춧가루는 굵게 간 것, 가늘게 빻은 것으로 나뉘어 있었지. 간장도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집 간장’과 ‘파는 간장’까지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 한 종류 빠진 것이 없었던 것 같아. 뭐하나 할 줄도, 아는 것도 없는 막내딸이었던 엄마는 그 양념 보따리를 받아 들고는 겁도 없이 덜컥 시집간다고 외할머니 품을 떠나왔어. 어쨌거나 신혼살림부터 지금까지 요리며 살림을 우격다짐으로 너희들 백일이며 돌잔치까지 했다. 한꺼번에 몇 명씩, 그리고 며칠씩 묵으러 오던 시댁 손님들을 다른 사람 손 빌리지 않고 아빠의 도움을 받아 삼시세끼 버티어 오기도 했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엄마의 성장 이야기인 <아들에게 주는 요리책>은 원래는 너희 결혼식 때 조그만 책으로 만들어 너희와 하객 분들께 선물로 드리려고 했었다.




 요리를 잘 못하는 엄마의 요리책은 '요리'【(料理):입에 맞도록 조리】라기보다는 '요리'【(要理):요긴할 요】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될 거야. 미래의 네 아내들이 “우리 시어머니가 아들을 잘 키워주셨네.”라며 너희들과 오래오래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혼자 살 경우도 생길 것을 염려하여 미리 잔소리를 모아 정리해두었다. 나름 잘 참는다고 생각하지만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그래도 엄청 줄인 거다. 읽다 보면 ‘뭐 이런 것쯤이야.’ 아니면 ‘이런 건 인터넷에 널렸는데.’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너희들을 떼어놓으면서 주는 <엄마 표 양념 보따리>랄까? 너희들에게 줄 이 선물을 준비하느라 우리가 함께 먹은 음식을 더듬고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느꼈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리니 즐겁다. 이제 내 품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날아다닐 너희들이 언젠가는 내 며느리들의 남편이 되고. 내 손자의 아버지가 되겠지. 그 시작은 너희들의 ‘홀로서기’다. 엄마의 선물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봄. 엄마가



어머니께서 한복을 입고 신혼집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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