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현실이 맞닥뜨린 순간

by 김환

낭만과 현실 중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건 튀르키예 여행이다. 나는 신혼여행을 간다면 튀르키예로 여행을 갈 거다. 언제부터 정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신혼여행은 튀르키예다.


연인과 여행이야기를 하다가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더라. 우리의 해외여행을 어디로 가면 좋을까? 우리 둘 다 안 가본 곳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좋았던 곳을 데려가야 하나.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가 남미와 동남아, 유럽을 빼고 연인이 다녀온 오세아니아, 동북아를 제외하고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어디 있을까.


사회초년생이었을 땐 연휴에 연차를 붙여서 해외여행을 갈 생각이 설레었는데 해외여행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출국을 해야 하는 제주도도 조금 귀찮아졌다. 연차를 써서 구태여 가고 싶은 여행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외여행을 간다면 이왕이면 그 여행은 좀 더 특별한 신혼여행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신혼여행에 현실 대신 낭만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싶었다.


소중한 연차를 갈아 넣는다는 현실보다 우리의 특별한 여행순간이었으면 좋겠고 예산이 얼마고 가성비가 어떻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억할 수 있는 낭만적인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의 정점은 카파도키아에서 보는 열기구이기에, 그렇게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튀르키예로 확정이다. 매일 1일 1 카이막 먹어야지.



낭만을 챙겼으니 현실을 마주 봐야겠지...? 사실은 현실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낭만에만 빠지고 싶었다. 현실자각의 시작은 전세기간 만료날짜가 다가오면서 착실하게 깨달아지더라. 전셋집이 처음에는 1억이었다가 그다음엔 1억 3천125만 원 지금은 1억 6천인데 다음엔 얼마가 될지. 점차 부담감이 쌓여만 갔다. 월세로 옮겨가야 하나 아니면 연인과 함께 매매를 해야 하나. 전세는 아니다 싶어서 먼저 매매 집부터 보러 다녔는데, 구입자금대출은 지금껏 내가 해오던 전세자금대출이랑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더라.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은행 상담을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막상 되겠거니 생각했던 신혼부부 생에 최초 대출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욕심에서는 처음부터 적당한 다세대 매매로 집도 사고 적당히 결혼식올리고 튀르키예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딱인데 그건 정말 욕심이었다. 그럼 이 욕심과 허망함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결정'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와 연인인 '우리'가 같이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산더미다. 결정을 하려면 서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해야 하는데 대화가 제일 어렵다. 얼마나 많은 시기들이 엇갈리고 타이밍을 놓쳐왔는지. 그때마다 얼마나 울고불고 터놓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서로를 알아갔는지. 마주 보고서 대화를 시작하기까지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일요일, 집에서 일어나 찬장에 있는 스팸과 냉장고에 있는 청양고추를 잘잘 볶아다가 김을 돌돌 말아 스팸 땡초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후에는 평일동안 밀린 집안일을 클리어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노트북을 챙겨다가 미리 알아둔 카페로 출발했다. 통창에다가 층고가 높은 앤틱한 카페는 입식과 좌식 테이블이 반층이 나눠져 있어서 노트북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러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겠더라. 그렇게 내 새로운 방앗간이 추가되었다.


분위기 넘치는 좌식 테이블에 앉아 우리는 엑셀을 열었다. 낭만 넘치는 공간에서 엑셀 한 칸 한 칸에 우리의 자본을 입력하고 시간을 계산해 봤다. 생각보다 명쾌한 순간이었다. 혼자서 느꼈던 막막함도 덜어지고 우리가 해 낼 앞으로가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바라보고서야 내 옆에 자리하던 낭만적인 사람이 온전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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