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레오나즈 베이커리에서 말라사다를 먹던 하루의 기록
그래, 어쩌면 우리는 말라사다를 먹기 위해 하와이에 갔는지도 몰라.
호놀룰루 숙소 주변에 말라사다를 파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전율했다. 심지어 그 빵집은 그리 멀리 있지도 않았다. 한밤중만 아니었다면, 한달음에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말라사다가 무엇인지 모르고도 잘 살아온 삶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집착이 생긴 것은 순전히 사나다 아츠시 감독 탓이다. 그가 만든 <호노카아 보이>를 보고 나서부터 몹쓸 강박 증세가 생겼기 때문이다. 믿기진 않았지만, 이 모든 욕구는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기 불과 2주 전에 생겨난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살고 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불쑥 한 마디를 던진다. 그 말이 방심하고 있던 나의 왼뺨을 살짝 때린다. 평온한 마음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작은 돌멩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어느새 점점 커져만 가는 여울질이 된다. 그 말의 진의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이 순식간에 넋을 놓게 만든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바람이 되는 곳. 소원을 이루어 주는 달 무지개가 뜨는 곳. 그리고 그런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 연인. 두 사람은 지금 달 무지개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뻔한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넘겨짚는 순간, 연인은 별안간 이별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영화 속 이야기가 이제 막 솔깃해지기 시작하는데, 좀처럼 집중이 안된다. 영화 속 하와이 풍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바듯이 정신을 가다듬을 즈음. 이번에는 차례차례 등장하는 수많은 요리가 혼을 쏙 빼놓는다. 아름다운 풍경과 먹음직스러운 요리에 입맛을 다시다 보니, 이미 영화는 끝나 있었다.
솔직히 영화 속 이야기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리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요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말라사다 도넛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라사다는 설탕이 듬뿍 뿌려진 평범한 사각형 도넛이었다. 그게 왜 그렇게 특별해 보였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말라사다를 처음 본 순간, 실물을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입만 먹어보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스웠던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호노카아라는 마을이 하와이에 실제로 있는지도 몰랐다는 점이다. 그곳에 가면 정말로 말라사다를 만날 수 있는지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하와이에 가기만 하면, 호노카아 마을에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곳에 가면, 왠지 말라사다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와이 도착한 지 60시간이 넘어서야, 호노카아 마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동시에, 그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또 타야 한다는 비극적인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으니까. 호노카아 마을은 오하우 섬이 아니라 빅아일랜드에 있었다. 모든 게 물 건너갔다고 낙담한 그 순간. 오하우에서 말라사다를 파는 곳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운명적인 밤이었다.
“레오나즈 베이커리에서 말라사다를 판대.”
“정말? 진짜야?”
흥분했던 나 못지않게, H도 방방 뛰었다. 틈날 때마다 그녀에게 말라사다 이야기를 미리 해두었던 덕분이다. 우리는 이미 말라사다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물론, 말라사다에 대한 나의 광기 어린 집착에 비하자면, 그녀의 욕구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웠지만.
말라사다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숙소에서 빵집까지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동쪽의 도심을 곧장 가로질러가는 2.6km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최종 선택한 길은 알라 와이 운하를 따라 쉬엄쉬엄 돌아가는 4.1km 길이었다. 레오나즈 베이커리까지 쉬엄쉬엄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상상 속의 말라사다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마음의 준비도 없이 허겁지겁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레오나즈 베이커리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상상하고 음미할 것이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 두 사람이 이 순간을 함께 추억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말라사다를 먹으러 가는 이 순간을 몇 번씩 되새김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생생하고, 아름답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마음이 충분히 벅차오를 때까지 걷고 나면, 말라사다가 우리를 해맑게 맞이해줄 것이다.
하와이는 아침 햇살조차도 따갑다. 한 겨울의 햇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와이의 햇살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눈치 없는 몸은, 그늘 속으로 숨기 바쁘다. 다행스럽게도, 도심의 거리는 아침부터 길게 드러누운 그늘로 가득하다. 신기하게도 그늘 속에 숨기만 하면, 하나도 덥지 않았다. 도심의 건물들이 만든 그늘과 햇살 사이를 번갈아 걷다 보니, 어느새 운하 입구에 도착했다.
운하 입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알라 와이 운하는 완벽에 가까운 투시도를 뽐내고 있다. 투시도의 한가운데. 그러니까 소실점이 있을 곳 같은 그곳에는 생뚱맞은 모양의 산이 있었다. 다이아몬드 헤드라고 불리는 그 산은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펑퍼짐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 산의 머리 부분을 뭉텅 자른 듯 한 우스운 모습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모양새가 운하의 수평선과 절묘한 궁합을 이루고 있다. 아직 온전한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속단하기에는 좀 이르긴 했지만 말이다. 좀 더 걷다 보면, 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산에게 다가갈수록, 산도 우리에게 점차 다가올 테니 말이다.
운하 옆으로 기대 이상으로 잘 정비된 길이 직선으로 나 있었다. 콘크리트로 빚은 단단하고 평탄한 길이다. 운하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구조적으로 같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직선으로 힘차게 쭉 뻗은 그 길은, 그냥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눈이 금세 지쳐버린다. 그 피곤함을 잠시나마 다독이는 것은, 운하 곁에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들이었다. 직선의 단조로움 속에 나무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자신들만의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도심의 거대한 건물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오후가 되면 그들만의 축제가 시작할 것이다. 나무들의 그늘이 바람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할 것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상하게도 운하의 넓이는 점점 넓어져 간다. 그것이 착시인지, 심리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손만 뻗으면 건너편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아득해 보인다. 알라 와이 운하는 자연이 만든 물길이 아니었다. 인간의 거친 욕망이 만들어낸 물길이다. 그 욕망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검푸른 운하의 깊이처럼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이 운하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모두들 미래를 축복했을지도 모른다. 운하로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었을 것이고, 사람과 물건들을 분주하게 실어 날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배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운하 속에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달려가는 소년의 괴성이 잠시 운하에 울려 퍼질 뿐이다.
얼마나 길을 걸었을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할머니 한 분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서 운하 속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와 충분히 가까운 거리가 되자, 할머니는 우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운하 쪽을 가리킨다. 할머니가 가리킨 그 손을 쫓아 가보니, 물고기가 한 마리가 보인다. 화가 잔뜩 난 것인지 몰라도, 꼭 복어처럼 생긴 물고기였다. 처음 보는 운하 속의 생명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신기한 물고기를 오랫동안 무심히 바라보는 할머니. 할머니의 애완견. 우리 두 사람. 그리고 우리 뒤에서 뒷짐을 지고서 멈춰있던 시간. 물고기도 그런 우리의 모습이 몹시도 반가웠는지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의 고삐가 막 풀린 순간. 갑자기 할머니가 우리에게 폭포수 같은 영어를 퍼붓기 시작한다. 귀를 기울여 열심히 들어 보지만, H도 나도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동네에 정말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말이야. 나도 오늘에서야 이 물고기를 처음 봤어. 정말 신기해. 그동안 그렇게 수 없이 산책을 했는데 말이야. 왜 이제야 이 물고기를 봤을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운이 엄청나게 좋은 거야. 나는 여기 하와이에 평생 동안 살면서 이제야 이 물고기를 만났는데, 너희들은 여행 오자마자 이 물고기를 만났잖아. 내 말이 맞지? 그렇지? 그런데, 혹시 낚시는 할 줄 알아?”
뭐 대충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기나긴 수다 뒤에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H는 엄지손가락을 최대한 크게 들어 보이면서 할머니에게 정성껏 이렇게 화답을 했다.
“오! 빅 피시. 굿!”
카파후루 애비뉴에 들어서자마자, 여유로웠던 걸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빨라진다.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마음을 다시 다잡기 위해 의식적으로 속도를 더 늦춰본다. 그제야 거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느릿느릿 펄럭이는 빨래들이 눈에 들어온다. 90년대의 미국의 시골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거리의 간판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낡은 시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거리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아무도 그 느림을 느리다고 탓하지 않는다. 우리의 느릿한 발걸음마저 완전히 멈추게 만든 것은 자동차의 경적도, 신호등의 적색 신호도 아니었다. 멀리서부터 눈길을 붙잡는 벽화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중에서도 도심을 서핑하고 있는 개구쟁이 앞에 서서, 잠시나마 휴식을 주어 본다.
“하와이 사람들은 모두 다 패션 테러리스트 같아.”
H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나는 그 말의 속 뜻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하와이에서 의식적으로 옷을 잘 차려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관광객들이다. 하와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옷을 입는다.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닌다. 이런 날씨에 굳이 멋을 낼 이유도 없고, 간편하고 시원한 게 최고다. 그래서, 점점 패션에 무감각해진다. 나도 모르게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와이에 패션 테러리스트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멀리서부터 선명하게 보이는 빨간색 간판. 그곳에 적혀있는 베이커리라는 단어를 본 순간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곧 말라사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가게 앞에 다가갈수록 심장 박동수는 두 배 가까이 빨라졌지만, 마지막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다.
레오나즈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잠시 내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휩싸였다. 다시 밖으로 나가, 두 눈으로 간판을 또박또박 읽고 나서야 다시 빵집으로 향한다. 내가 당황했던 이유는 상상했던 말라사다가 가게 안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열대 가득 말라사다가 산처럼 가득 쌓여 있을 거라는 나의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진열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말라사다가 아니었다. 초콜릿으로 금방 샤워를 마친듯한 브라우니, 한국의 마트 어디에서라도 구경할 수 있는 초코칩 쿠키, 이름도 색도 생소한 수박 쿠키, 왜 마카롱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는 과자. 진열대 안은 말라사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흥분지수가 과도하게 상승해 가는 나를 이성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H의 한마디였다.
“말라사다다.”
H가 가리킨 그곳에서, 따끈따끈한 말라사다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열대의 안 쪽에 숨어 있는 비밀의 공간에서 박스에 담긴 말라사다가 이제 막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진열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모두 말라사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줄의 끄트머리에 서서 어떻게 주문이 이뤄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여자가 주문을 받는다. 주문은 비밀의 공간으로 바로 전달된다. 이 곳에서는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안에서는 부지런히 말라사다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숙성된 반죽은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이미 말라사다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을 것이다. 주문이 전달되는 순간, 반죽이 기름에 튀겨지기 시작한다. 2-3분 정도. 그리고 튀겨진 말라사다는 재빠르게 설탕에 버무려진다. 설탕의 맛은 모두 3가지. 오리지널. 시나몬. 리힝. 여기까지가 평범한 말라사다 도넛의 제작과정일 것이다.
레오나즈 베이커리에는 말라사다의 업그레이드 버전도 있었다.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평범한 말라사다 안에 내용물이 채워진 것이었다. 커스터드, 마카다미아, 코코넛, 초콜릿, 지금 유행하는 것. 모두 5가지였다.
업그레이드 버전의 말라사다에 잠시 혹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평범한 말라사다였다. 오리지널과 시나몬을 6개씩 주문한다. 리힝이 무슨 맛인지 정말 궁금하긴 했지만, 모험은 일단 피하기로 한다.
기다리던 말라사다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말라사다가 납작해진 달처럼 둥글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본 말라사다는 사각형에 더 가까웠었다. 그 정갈한 모양에 마음을 빼앗긴 건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일어났지만, 둥근 말라사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민하면 할수록 눈 앞의 말라사다의 향기가 더 짙어졌기 때문이다. 당신, 나를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만 있을 건가요? 말라사다는 내게 달콤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말라사다의 모양이 뭐가 중요해. 맛만 있으면 되지? 안 그래?”
H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그렇게 재빨리 선언해 버리고, 말라사다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이게 바로 말라사다구나. 이 말라사다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왔구나. 감격에 겨워서, 말라사다와 몇 번의 입맞춤을 했는지 모른다.
“자기야. 근데 이 말라사다 말이야?”
“응? 이 말라사다가 왜?”
“어디선가 많이 먹어 본 맛 같지 않아?”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대.”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 갓 튀겨낸 도넛이랑 별 차이 없는 것 같지 않아?”
“그래도, 먹다 보면 뭔가 미묘하게 다른 게 느껴지지 않을까? 좀 더 깊은 맛이랄까? 좀 더 심오한 맛이랄까?”
“글쎄. 난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H의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와이의 말라사다는 한국의 도넛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평을 하자면, 호들갑을 떨 정도로, 몸서리를 칠 정도로, 동네방네 소문을 낼 정도로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어쨌든 잠시나마 나는 <호노카아 보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레오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H도 나도 말라사다에 대해 갖고 있던 호기심을 해소했다. 적어도 말라사다에 대한 집착은 없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말라사다를 먹기 위해 H와 함께 걸어왔던 이 길, 이 순간은 이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자기야. 레오나즈 베이커리의 말라사다 중에서, 리힝이라고 있었잖아. 혹시, 그 맛이 무슨 맛인지 궁금하지 않아?”
처음으로 말라사다를 먹은 날부터 정확히 18일 후. 나는 H를 조르고 졸라서, 또 한 번 레오나즈 베이커리를 찾아갔다. 그때처럼, 그 길을 다시 걸었고, 알라 와이 운하 속의 물고기를 또 만났으며, 그 물고기를 낚으려는 사람도 만났다.
리힝이라는 이름의 그 말라사다는 오렌지색 설탕이 뿌려진 말라사다였다. H는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이상한 맛이라고 했다. 리힝 말라사다를 먹자마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어휘로는 이 맛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그 맛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