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하와이다운 공원에서 우리만의 자리를 찾다
우리 여기 자주 오게 될 것 같지?
알라모아나 공원. 그곳은 하와이에서 우리가 제 발로 찾아간 첫 번째 공원이자, 첫 번째 바다였다. 그 공원이 첫 번째 영광을 얻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이었고, 공원의 끝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깝고, 바다가 붙어 있는 공원. 알라모아나 공원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하와이에서 처음 본 바다는 알라모아나 공원에서 바라 본 바다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다를 제외한다면, 이미 우리는 와이키키 바다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도착하던 날. 마중 나온 Y가 제일 먼저 우리를 데려가 준 곳이 와이키키 바다였다. 일단 바다부터 봐야겠지. Y는 달리는 차 안에서 그렇게 말했다. 너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해서, 하마터면 그래, 맞아 그렇게 맞장구 쳐줄 뻔했다. Y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바다는 아껴두고 싶었다. 좀 더 천천히 하와이의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보고 싶을 때까지 꾹꾹 참았다가, 절실히 보고 싶을 때 가고 싶었다. 딱히 표현은 안 했지만, H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가장 맛있는 것을 제일 나중에 먹는 H였으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Y를 제지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H와 Y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쑥 끼어들어서, 굳이 그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창밖을 보면서, 이대로 와이키키로 곧장 달려가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와이키키는 나쁘지 않은 바다였다. 명성만큼의 감흥은 없었지만, 그건 바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몸 때문인지, 시차 때문인지 몰라도 하와이에 왔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바다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기운을 차리고 다시 한번 와이키키에 와야겠다는 생각만 곱씹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알라모아나 공원을 향해 걸었다. 알라모아나 공원은 작은 공원이 아니었다. 동네의 자그마한 공원 정도를 상상했던 나는 알라모아나 공원 안을 걸으면서, 우습게도 알라모아나 공원을 찾고 있었다. 저 안 어딘가에 내가 찾는 공원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친 발걸음도 쉬어갈 겸 거대한 나무들의 그늘 아래 숨는 순간, 나무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바보야. 너는 지금 알라모아나 공원 안에 있어.
H는 공원을 가로질러 곧장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바다가 H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의자까지 곧장 걸어가더니,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다를 바라보던 H가 살짝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이게 하와이 바다구나. 바다는 깊고, 푸르고, 평화로웠다. 바다는 끝없이 확장되는 듯하다가 건너편의 건물들 속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긴 수평선이 짧은 수직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맞은편에 보이는 그 건물들은 도시의 냄새를 잔뜩 풍기면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 많은 건물들의 숲 중에서, 이제 막 지어지기 시작한 건물 하나가 바다 건너 우리에게까지 소리치기 시작한다. 네가 앉아 있는 거기가 바로 호놀룰루라고. 너는 지금 하와이에 있는 거라고.
눈이 시릴 때까지 앉아 있던 H가 다시 입을 연다. 우리 여기 자주 오게 될 것 같지? H의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벌써 하나 찾은 기분이었으니까. 그곳은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하와이에 온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았는 데 뜻밖의 수확이다. 한참을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얄미웠던 걸까? 갑자기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 후드득 곁으로 날아온다. 이제 그만 비켜주시지. 거기는 우리 보금자리인데 말이야. 새들이 슬슬 텃세를 부리기 시작한다. 자릿세를 내라고 시위를 하기 시작한다. 먹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여행객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다. 새들의 무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불현듯 여기가 우리의 보금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새로운 보금자리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