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와이의 바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와이 숙소 거실에 서서 바람 소리를 듣다

by muum

숙소의 거실에 서서 창 밖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투명한 창에 언뜻 비치는 것이 좋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자라고 있는 건물들의 무질서함이 좋았다.

삐죽 빼죽 튀어나온 건물들의 솔직한 욕망이 좋았다.

그 건물들 사이로 물길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강인지 운하인지 정체가 모호한 물길이 좋았다.

정말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길 없는 침묵의 물길이 좋았다.

풍경의 끝. 가장 멀리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산이 좋았다.

누군가가 윗부분을 일부러 잘라낸 것 같은 그 산이 좋았다.

불안해 보이고 불완전해 보이던 그 산의 라인이 좋았다.

눈 앞의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람 소리였다.

거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 바람이 좋았다.

바람은 내가 창 바깥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바람 소리에 놀라 흠칫 뒤로 물러서는 내가 우스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람은 죽은듯한 풍경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세계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히 바람이었다.

바람 소리를 듣는다.

바람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나는 바람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창문 앞까지 세차게 불어오는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부딪히면서 되돌아가는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살아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나도 살아 있었다.

숙소의 거실에 서서 창 밖의 바람 소리를 듣는다.




하와이 숙소의 거실에서 본 풍경. 가까운 곳에는 알라 와이 운하가, 먼 곳에는 다이아몬드 헤드가 보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가 호놀룰루를 기억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