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정리, 22일 차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by muum



iHl9lH0PQLMrSlMQ9GGUOCesgeX3mm-GBlhQUgMnGEgVRXxrc2iJUtecnjpbGnWkMXZHT3a8g1DGk7lqsCP8jDVqKvmonZfzbU6UCT9dWR9AwlQFZO2RtuCAp6gMMSCBN882C6nS


3장의 CD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버리기 직전에, 기억을 떠 올려본다.

눈 앞의 CD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게로 온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나마 남아 있는 기억이라곤, CD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에 대한 단편적인 파편들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CD 안에는 아마도 디자인 소스가 들어 있을 것이다.

세 번째 CD PhotoDisc Web E-ssentials에는 사진자료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버리기 전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 재생해 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리기 전에,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도, CD를 버릴 수 있을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추측하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직도 쓸만한 내용이면 어쩌지? 그러면 버리기 아까울 것 같은데.


모르고 버리는 것이 나을까? 내용을 확인하고 버리는 것이 나을까?


머리가 점점 복잡해진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가지고 있던 CD들인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3장의 CD를 버렸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도 몰랐던 CD를 버렸다.

CD 안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하는 CD를 버렸다.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물 정리, 21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