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3장의 CD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버리기 직전에, 기억을 떠 올려본다.
눈 앞의 CD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게로 온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나마 남아 있는 기억이라곤, CD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에 대한 단편적인 파편들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CD 안에는 아마도 디자인 소스가 들어 있을 것이다.
세 번째 CD PhotoDisc Web E-ssentials에는 사진자료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버리기 전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 재생해 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리기 전에,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도, CD를 버릴 수 있을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추측하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직도 쓸만한 내용이면 어쩌지? 그러면 버리기 아까울 것 같은데.
모르고 버리는 것이 나을까? 내용을 확인하고 버리는 것이 나을까?
머리가 점점 복잡해진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가지고 있던 CD들인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3장의 CD를 버렸다.
있는지 없는지 존재도 몰랐던 CD를 버렸다.
CD 안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하는 CD를 버렸다.
그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