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엄마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1)

by 소방관아빠 무스

(사진 =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의 강부자 선생님)



51살짜리 아저씨가 '울엄마'라고 하다니 괜히 닭살을 넘어서 소름(?) 돋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게 울엄마는 '울엄마'다. 그렇다, 그냥 울엄마일 뿐이다. 내게는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울엄마인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릴 때 그걸 처음 지켜봤을 사람, 내가 처음 걸음마를 할 때 박수를 치며 응원했을 사람, 내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는 걸 흐뭇해하면서도 뒤돌아서 눈물 흘렸을지도 모를 사람, 바로 울엄마인 것이다.


그런 울엄마가 아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신장이 나빠지는 말기 신장병을 앓아 혈액투석을 받으신 지는 벌써 5년째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욕실에서 미끄러져 척추에 압박골절을 입어서 한 달 동안이나 병원신세를 지다 나오셨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려서 저승문턱(?)을 오르내리시다가 겨우 나아서 퇴원하신 거라면 이번에는 압박골절과 함께 허리 디스크가 터져 다리통증을 달고 퇴원하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되셨다. 그것도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며 한 걸음씩 내디디신다.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 신장투석을 받으면서 디스크 수술을 하기엔 무리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 이렇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신장기능이 상실되더니 이제는 허리와 다리까지... 하나둘씩 울엄마의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힘들다.


신장이 안 좋은 것이 유전적인 면이 있는지 나도 한 때 신장염에 걸렸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었다. 그때 울엄마는 신장염에 걸려 고열과 두통, 오한에 떠는 나를 들쳐업고서 병원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내달리셨다. 고열에 들떠서 헤롱거리면서도 울엄마의 등에 업혀 울렁거리던 그 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 맘 같아서는 그때 울엄마처럼 나도 울엄마를 등에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울엄마는 허리가 아프시니 그럴 수도 없다. 혈액투석 때마다 내 차에 울엄마를 태우고 조심스레 병원으로 가서 휠체어를 빌려온다. 그리고 거기다 조심스레 울엄마를 태우고 혈액투석실에 가서 병원침대에다 조심스레 울엄마를 내려놓고 온다. 혈액투석이 끝나면 다시 역순이다.


혈액투석을 받으시느라 혈관이 부풀어 올라 커다랗게 부어버린 왼쪽 팔은 언제 보아도 안타깝다. 언제까지 혈액투석을 받으셔야 할지, 아니, 언제까지 혈액투석을 받으실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소방관이지만 울엄마한테는 아무것도 못 해 드리는 못난 아들일 뿐이다. 남은 여생 건강하게 사셔야 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냥 병원에 모셔드리는 것 정도랄까...


오늘 밤에 자다가 편안하게,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오래 사셔야죠...'하고 반박할 수가 없다. '그래요, 그렇게 편안하게... 가실 수 있다면 그러세요...'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