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엄마(2)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2)

by 소방관아빠 무스

(사진-한국병원 네이버 블로그)


울엄마를 내가 처음 병원에 모시고 다닌 건 2005년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신장이 안 좋아지셨다는 말씀-이건 아마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겠지?, 어떻게 처음 발견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을 하셔서 동네 의원급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으셨다. 몇 번 그렇게 가서 약을 먹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병세는 점점 심각해져서 그 병원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신장 전문병원이라고 하는 B병원으로 옮겨서 진료를 받은 지가 또 한 10년쯤 되었다. 거기에 다니면서도 어머니가 신장투석을 받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거기에 유명하신 박사님들이 엄마를 잘 고쳐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신장수치가 떨어져 어느 날 신장투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나 나나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신장투석을 다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그게 얼마나 힘든 병인지 이미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피를 걸러주는 신장이 그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꼴로 병원에 가서 서너 시간 동안이나 피를 걸러주는 기계에 혈관을 연결하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소방서에 들어와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정기적으로 신장투석을 다니는 환자가 있었다. 60대 중반의 할머니셨는데 아침 9시만 되면 119로 구급차를 불렀다.


"할머니, 이 차는 응급환자들만 타는 차예요, 할머니처럼 정기적으로 병원 가시는 분들은 타면 안돼요, 그러니 오늘은 태워 드리겠지만 다음부터는 부르면 안돼요!~"


"으응? 메라고?"


그 할머니는 진짜로 귀가 안 들리는 건지, 일부러 그러시는 건지, 그렇게 말하면서 노상 구급차를 불러댔다. 우리는 할머니를 구슬리기도 하고, 다음부터 이러면 진짜로 안 올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어 응급환자가 없으면 태워드리곤 했다. 사실 그 할머니가 생활보호 대상자라 택시를 타고 갈 형편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 관절염이 있었던 그 할머니는 혼자 구급차에 오르기도 어려워서 내가 다리를 구급차에 올려드리려다 보면 퉁퉁 부은 발-만성 신장병 환자 특유의 증상-이 만져지곤 했다. 그 할머니는 구급차에 올라서는 한 달에 병원비가 얼마고 택시 타고 갈 돈도 없어 돈 떨어지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혼자서 넋두리처럼 늘어놓고는 하셨다. 마치 우리가 들으라는 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를 보며 신장투석 환자가 저렇게 힘들구나, 저 할머니 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울엄마가 그렇게 된 것이다!


거기다 울엄마는 얼마 전 욕실에서 나오다 넘어지시는 바람에 허리에 압박골절이 와서 안 그래도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하는 허리를 이제는 아예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경외과에 갔더니 신장투석을 하고 있고 고령이라서 디스크 수술도 어려워 시간을 두고 경과를 보자는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나, 내가 다시 울엄마의 구급대원이 되는 수밖에...


그때 그 할머니처럼 구급차를 부를 수는 없으니 비번날 내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다.(내 당번날은 울산에 사는 누나가 부산까지 내려와 병원에 모시고 간다.) 내 차에 태워서 조심조심, 허리 디스크 환자라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간다.-아, 옛날에 구급하던 생각난다.- 차가 병원에 닿으면 휠체어를 빌린다. 입구에 보안 직원이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다. 눈인사로 통과한다. 투석실에 가서는 어머니의 체중을 재고 투석하는 베드에 눕힌다. 조심스레 눕히지 않으면 어머니의 허리가 아픈 만큼 내 마음도 아파진다. 어머니에게 4시간 있다 오겠다는 말을 하고 투석실을 나선다. 그리고 4시간 후에 다시 돌아와서 역순으로 어머니를 집에까지 모셔드린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다. 그때 어머니는 첫끼일 때가 많다. 하지만 많이 드시진 못하신다. 당신이 먹고 남은 밥을 나 먹으라고 덜어주신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슬쩍 짜증이 올라온다, 왜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또 짜증을 부릴 수는 없다. '감사합니다.'하고 맛있게 먹는 게 정답일 것 같다.


며칠 전 어버이날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울산에 사는 누나와 함께 기장에 대게를 먹으러 갔다 왔다. 어버이날이라 간만에 작정하고 무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대게를 앞에 놓고도 많이 드시지 못했다. 또 나 먹으라고 살을 발라준다. 나이 50된 아들 먹으라고 80된 노모가 대게 살을 발라주는 꼴이라니... 잘 못 드시는 어머니를 보고 맘이 짠하기도 하고 나 먹으라고 살을 발라주시는데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냥 어머니 드세요, 잘 드시지도 못하면서..."


짜증을 슬쩍 내려는데 누나가 눈짓으로 '그냥 먹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주시는 대게 다리를 입에 넣는데 짭짤한 맛이 너무 좋아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눈물이 슬쩍 나려 했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동해의 바다가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