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9)

by 소방관아빠 무스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기찻길옆 연다방')


지난여름부터 정신없이는 아니고 좀 바빴다. 7월에 부산 학장천에서 실종된 할머니를 찾기 위해 시작된 수색작업이 여름을 다 보내고 다시 9월에 다대포에서 실종된 할아버지를 찾는 수색작업으로 이어져 근 세 달간 계속되던 수색작업이 그제야 끝이 났기 때문이다. 나도 힘들었지만 그동안 같이 수고한 우리 항만소방서 소방 2정대 대원들을 비롯한 부산 소방대원들 모두에게도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부산 학장천에서 실종된 할머니는 갑자기 내린 집중호우에 휩쓸려 가서 실종됐고 다대포에서 실종된 할아버지는 정확한 경위는 모르지만 바닷가에 소지품과 신발, 옷가지등 유류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몇 달간 소방정을 타고 부산 해안을 수색하며 실종자를 찾다 보니 우리 부산이 점점 '노인과 바다'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과 바다는 내가 좋아하는 헤밍웨이의 소설로 중학교 때 퍽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꽤나 낭만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청춘을 바다에 다 바치고 석양 아래서 은발을 휘날리며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도 저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처럼 소방에 내 청춘을 불태우고 바다를 보면서 늙어가는 그것이 되지 않을까 살짝 상상도 했었다. 그런데 그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것은 직장을 찾아서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노인과 바다밖에 남지 않은 도시가 바로 부산이라는 말이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요즘 낮에 지하철을 타면 좌석 가득 앉아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산 곳곳의 거리에 어딜 가나 앉아있는 노인들의 모습도... 정말 부산은 노인과 바다밖에 남지 않은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에서도 낮은 출산율, 공무원을 제외하면 번듯한 일자리가 없는 부산, 내 주위에 많은 친구들도 벌써 부산을 떠났다. 일자리와 문화생활이 넘치는 서울로 서울로,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다는 그곳으로 모두 떠난 것이다. 그 대신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노인들, 그들 중 많은 노인들이 낮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이들은 우리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홀로 독거노인이 되어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부족한 끼니를 걱정하며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 홀로 머물며 tv를 벗 삼아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위에서처럼 어떤 이는 자연재해로, 혹은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울 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던가, 몸이 아파 운동은커녕 가벼운 산책도 힘들어 혈액투석을 위해 병원에 갈 때를 제외하곤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머무신다.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로 tv를 보는 것이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실까? 이틀에 한 번씩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드리기 위해본가에 가지만 많은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낼 수는 없다.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고 와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만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그러다 보니 그들의 몸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려 고통 속에 살아가는 노인들도 많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인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영국에 '외로움 장관'이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해리포터의 나라답게 상상력을 초월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가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외로움이야말로 퇴치해야 할 질병이며 1급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관리(?) 해야 할 관리청이 하나쯤은 생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25의 화마를 견디고 6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기고 70~80년대의 근대화의 역군으로 밤낮없이 땀 흘려가며 우리 세대를 키워낸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잔잔한 바다의 석양을 받으며 풍요로운 말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거친 인생의 파도를 맞으며 외롭게 일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는 것은 자식세대로서 여간 가슴 아픈 것이 아니다. 이것이 나의 말년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서글픈 생각이 든다.


부산은 2030 세계 EXPO 유치를 위해 시장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으니 그 앞날은 밝을 것이다. 하지만 EXPO 유치를 비롯한 각종 교통망의 정비와 북항 재개발사업등 여러 가지 개발논리에만 묻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특히나 홀몸 어르신등 사회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산을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배려하고 외롭지 않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렇게 하다 보면 부산의 따뜻한 분위기에 감동해 더욱 많은 세계인들이 부산을 찾게 될 것이다.


평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온 어르신들이 이 나라에서 외롭지 않게 자신들의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들을 비추는 하나하나의 따스한 윤슬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