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2)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8)

by 소방관아빠 무스

(앞편에서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그런데도 별 말이 없으셨다. 야구가 지건 이기건, 사람들이 롯데를 응원하든 해태를 응원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별 시답잖은 걸로 그라노,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서 잠이나 자라!"


이런 말 한마디로 사태를 종결(?)시켜 버리셨다. 평생 동안 생계를 위해 새벽 5시면 조출(朝出-그 땐 그렇게 불렀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한다는 의미인듯...)해 온 아버지 입장에서는 야구니, 해태니 롯데니 하는 것들이 아무씨잘데기(?)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저 여유 있는 사람들의 시시한 놀잇거리일 뿐, 하루종일 노동에 지친 아버지에게는 그저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한시간이라도 더 자는 것이 소중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에 지친 아버지에게도 쉬는 날이 있었다. 첫 상공일(?)이라며 한 달에 한번, 첫번째 일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출근하시던 아버지에게는 그날이 유일한 휴일이었는데 당신은 그날에 밀린(?) 일들을 모두 처리하곤 하셨다. 먼저 내 손을 잡고 이발소에 가는 것이 첫번째였다. 아버지가 이발을 하고 나면 그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다 나무 받침대를 대고 그 위에 키가 작은 내가 앉아서 이발을 했었다.


다운로드 (1).jfif (바로 요러쿠롬(?) 말이다~^^;;)-경산시청 제공


그리고 나면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억센 손에 때를 밀면 피부가 벌겋게 될 정도로 아팠지만 이젠 엄마와 함께 여탕에 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 그저 아프면 아픈데로 아버지 손에 몸을 맡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목욕을 마치고 나면 그런 내게 좀 미안했는지 병에 든 '서울우유'를 사 주시곤 했다. 그때의 서울우유 맛은 뭐랄까, 지금의 우유와는 뭔가 차원(?)이 다른, 무척 고소하면서도 고급진 맛이었다. 그 맛에 취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곤 했던 것 같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부터는 친구들과 같이 가게 되긴 했지만...


1-5588.jpg (저 우윳병 마개는 두꺼운 종이 위에 얇은 비닐을 덧씌워 놓았었는데 아버지는 손톱으로 살짝 쳐서 기가 막히게 마개를 잘 벗겨내었던 것이 기억난다.-네이버 블로그 '낭만동네' 펌)


휴일 오전을 이발과 목욕으로 마무리한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청하셨다가 오후가 되면 누나와 나를 데리고(엄마는 가게를 봐야 하므로 가게에 남겨두고...ㅠㅠ) 시내 나들이를 나가셨다. 주로 가는 코스가 정해져 있었는데 당시 부산 시민들의 유일한(?) 휴식공간이었던 용두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부산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남포동의 신천지 백화점(지금은 없어짐) 지하에 있는 돈가스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짓곤 하셨다. 그 돈가스집에는 일본에서 수년간 영업을 하신 돈가스의 달인(?)이 계셨는데 내 초등학교 시절에 그 집에서 맛봤던 돈가스는 이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추억의 맛이 되어버렸다. 그 돈가스 역시 지금의 돈가스와는 차원이 다른, 아니 아예 다른 음식이라고 할 만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먼저 나오는 스프가 예술이었고 그 얇은 두께에서 피어나는 풍미는 감히 내 인생 최고의 돈가스라고 극찬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인생 첫 번째 것에 대한 향수와 로망이 겹쳐져 기억의 퇴색으로 남곤 하지만 그 돈가스만은 정말 지금이라도 다시 영접하고 싶은 최고의 맛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일터와 가정밖에 모르시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즐기던 낙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끽연(喫煙-담배 피우는 것을 만끽함)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갔다 오면 내게 꼭 담배심부름을 시키셨다. 천원을 받아 담배를 두갑 사고 나면 남는 거스름돈은 내 몪이었기 때문에 나도 군소리 없이 담배심부름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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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즐겨 태우시던 담배 솔과 한산도)


아버지는 방 안에 앉아 내가 사 온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착'하고 붙이셨다. 그리고 천장으로 올라가는 연기를 보면서 '후'하고 한숨같이 긴 호흡을 내뿜으셨다. 그 신산스런 모습이 마치 직장인의 애환을-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이런 걸 알 리도 없었겠지만- 내뿜는 것 같아 그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처롭기도 했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매일같이 이런 일이 반복되자 우리 안방의 천장은 뿌옃다 못해 누래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안방에 있는 가구를 들어내고 보니 가구가 있었던 곳과 선명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벽지가 누렇게 바래 있었다.


문제는 안방의 벽지만 누렇게 바래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목도 그렇게 니코틴과 타르로 찌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오년전에 후두암으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후두암에 걸리기 전에 삼년동안 금연을 했고, 후두암으로 판정받고 나서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로봇수술을 받으셨지만 끝내 평생에 걸친 끽연의 댓가는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처럼 맑은 일요일이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랐던 용두산 공원이 생각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그언덕에 서면 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보일 것 같다. 평생 동안 힘든 노동에 시달려 왔던 당신도 이제는 편안히 가을 하늘 아래에서 쉬시고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