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옛날이여!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82)

by 소방관아빠 무스

지난주에는 소방서에서 '직장훈련'이란 걸 했다. 원래 '직장훈련'이라 함은 소방서 전체 직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소방서 대강당에 모여서 -내근직원과 119 안전센터 직원들까지 모두 다- 서장님의 훈시 말씀을 듣고, 도상훈련 -관내 어떤 대형건물에 불이 나면 어떻게 끌 것인가를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건물의 배치도 및 출동로를 확인하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 을 하고 기타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행사였다.


내가 처음 소방서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 직장훈련이 매우 큰 부담이었다. 관내 대형건물을 찾아가서 그 건물의 현황과 소방시설을 확인해야 했고 건물의 배치도나 거기에 가기까지 출동로, 소방시설 현황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전 직원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 앞에 계신 간부님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아니, 그게 아니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데, 왜 자넨 그렇게 하는 건가?"


"아니지, 그쪽 출동로보다 빠른 길이 있는데 왜 그리로 가려고 하나, 가다가 불법 주정차라도 있어 길이 막히면 도보로 이동해야 되는데?"


이런 지적질(?)을 받으면 등줄기에 땀이 나면서 멘붕 일보직전 상태까지 가기 일쑤였다. 또


"해봤어?"


"네?"


"그렇게 해 봤냐구?"


"...."


"거긴 위험물이 있어 물을 뿌리면 안 되는 곳이야, 3류 금수성 물질을 보관하고 있어 물을 뿌리면 안 되는데 파워 포인트에는 왜 물을 뿌리는 그림이 있어?"


간부님들은 관내에서 10~20년을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발표를 하는 신입직원들의 기를 꺾어놓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된통 당하고 무대(?)를 내려오면 바로 윗고참이 신입직원을 달래주었다.


"괜찮아, 잘했어, 원래(?) 첨엔 그렇게 깨지는 거야!"


윗고참은 자신의 신입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부님들의 훈시(?)는 왜 그렇게 길었던지... 서장님의 훈시가 끝나는가 싶으면 소방과장, 방호과장, 구조구급과장순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소방계장님이 나와서 마무리를 했다. 늘상 나오는 멘트는 소방공무원의 품위유지와 현장활동 철저였다.


그렇게 직장훈련을 마치고 나면 학교 다닐 때 한 달에 한 번씩 운동장에서 하던 '전체 조례(?)'는 정말 껌이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직장훈련이 끝나고 나면 센터별로 퇴장하는데 그때 센터장님이나 팀장님을 만나면 복장과 헤어스타일까지 지적받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센터 직원들도 있는데 우리 센터 직원이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일명 소방서 '똥군기' 시전이었다.


그런 군대식(?) 조회문화에 찌들어 살다가 변화가 오게 된 건 한 십 년 전쯤부터였나 보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던 '직장훈련'이 두 달에 한번, 분기에 한번, 반기에 한 번으로 줄어들면서 중요한 내용은 전달교육으로 갈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직장훈련'은 그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머리에 털나고(?) 처음 해보는 직장훈련이었다. 장소부터 본서 대강당이 아니라 우리 관내에 있는 롯* 백화점 영화관에서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백화점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할지를 거기서 직접 확인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토론 형식으로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전 직원을 거기 영화관에 모아놓고 파워포인트를 영화극장 화면에 띄워놓고 하려는 거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내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거기서 전 직원이 같이 모여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요즘 흥행하는 아바타 시리즈 3편 '불과 재!'를... 1년 동안 수고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스트레스를 풀어보라고 그런 영화관람으로 재충전의 기회를 삼기 위해 간부님들이 배려해 주신 행사라고 했다.


아! 옛날이여!


내 입에선 이선희의 옛날 노래가 불현듯 흘러나왔다.


https://youtu.be/6-8X7LS5Q90?si=Bz3rIiWtV3nm2ON4

(이선희 누님의 아~옛날이여!)


소방서가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니... 이렇게도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니... 정말 격세지감이고 상전벽해였다. 그렇게 직원들을 고생시키고 부담을 줬던 행사가 이렇게 직원들을 배려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화합의 장으로 변하다니... 내가 소방서에 들어온 지 20년 조금 넘었지만 정말 소방서 생활 오래 하고 볼 일이다. 그때는 직원들이 사고 치고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노심초사했던 간부들이었는데 이제는 위험한 현장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의 편에 서서 지원하고 배려하는 마인드로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영화 직전에 서장님의 훈시말씀이 있었지만 일 년 동안 고생하셨다는 것과 앞으로 안전하게 현장활동하라는 단 두 마디였다. 역시 젊은 서장님의 젊은 마인드였다. 그리고 그 뒤 시상식에는 각종 분야에서 실적이 있는 직원들에게 시상하는 순서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소방서와 관련해서 느낀 점은 단 한 가지, 이 영화 아바타의 부제목이 '불과 재'였기 때문에 직장훈련 상영장으로 고르지 않았을까 정도였다.


정말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렇게 권위적이고 직원들 위에서 군림하려 했던 지난날의 소방문화가 점점 청산되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직원들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 이렇게 긍정적으로 바뀌어 소방서의 조직문화도 정말로 건강하고 서로 배려하는, 그래서 간부와 비간부가 조화롭게 상생하는 조직문화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