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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Aug 21. 2018

빗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어서 좋아

내가 런던을 사랑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여름이 여름답지 않기로 유명한 (혹은 악명 높은?) 런던.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더워서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런던 사람들이 당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 한국에서 입던 한여름 옷을 열심히 챙겼는데, 내가 런던에 도착한 날부터 여름이 끝나고 가을 날씨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약 1년 만에 찾은 런던의 날씨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좋았다. 객관적으로 좋다는 게 아니라, 나한테 좋았다. 런던에 간다고 하면 '날씨 안 좋아서 어떡해? 항상 우중충해서 자살률도 높다며'라는 우려의 반응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런던의 날씨를 참 좋아한다. 물론, 비가 올 때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은 꺼려지지만, 실내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차분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나는 비가 온 후의 서늘한 공기도 좋아한다. 얼굴에 차가운 공기가 닿으면 왠지 마음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는 비가 많이 오고 쌀쌀한 런던의 날씨가 정말 좋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주면 정말이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타닥타닥 창문에 비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나의 지인들은 내가 런던이라는 도시를 사랑한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20살 겨울 방학에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하고 한눈에 반했고, 그 이후로 매 년 한 번 이상씩은 꼭 다시 방문하고 있다. 런던을 되찾을 때마다 '내가 언젠가 런던에서 꼭 산다'는 다짐을 하곤 했는데, 런던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드디어 런던에서 길게 머무르게 되었다. 진짜 행복하다. 런던에 산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정말 행복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였나, 한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이 태어난 곳에 무조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느끼는 곳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그곳에 살면 된다고. 나에게는 그곳이 바로 런던인 것 같다.


대체 런던이 왜 그렇게 좋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런던의 다양성에 대해 얘기할 때도 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씨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있고, 친절한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있고, 시크한 도시의 분위기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런던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좋다. 처음부터 그랬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그냥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곳의 어떤 특징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냥 좋은 것이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어떤 특징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기에 좋은 것처럼, 런던이 나에게는 이유 없는 애정의 대상이다.


돌아다니는 여행자가 아닌 머무는 사람으로서의 런던 생활에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도시를 매일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 곳을 떠날 때가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런던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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