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피곤함이 이어지고 몸에 힘이 없어 네덜란드에서 홈닥터*(*개인이 등록된 동네 가정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홈닥터는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결과가 나왔을 때 내게 먼지 알레르기와 경미한 빈혈 증상이 있다는 것을 홈닥터는 발견해 냈다. 홈닥터는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물어왔고,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야 가끔 이어지던 재채기와 기침 증상이 이해가 간다고 대답하자, 이게 다 자기 덕분이라며 홈닥터는 자기가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한 덕분에 내가 인생에서 모르고 지나칠뻔한 내 알레르기 증상을 찾아낸 것에 엄청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자기 덕분에 혈액검사를 해서 이 모든 결과를 알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을 되뇌는 홈닥터의 얼굴은 정말 굉장히 뿌듯해 보였다. 그런 홈닥터의 표정을 보며 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꼈지만, 홈닥터 덕분에 이렇게 알게 되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증상도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한 달 기한의 체류비자를 네덜란드에서 발급받아 중국에 입국했다. 그 기한 동안 거주증 발급을 받아야 하기에 입국 후 서류 절차를 바로 시작했다. 그 절차 중 하나가 중국 정부기관에서 진행하는 신체검사를 받는 일이다. 신체검사를 하기 전 5시간 동안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무슨 검사항목이 포함되어 있나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 일찍 검사가 진행되는 건물에 가보니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이미 장소는 북쩍이고 있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소지품은 사물함에 넣은 후 검사 장소로 옮겨갔다. 다양한 기초검사와 함께 초음파, X-ray, 심전도 검사까지 진행한 후 며칠 후 검사 결과지를 받았다. 이 검사 결과지와 한 달 동안 거주 중인 주소지에서 발급된 확인증 등을 갖고 관련 정부 기관 사무소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고 신청서를 제출하면 거주증 발급 신청 서류절차가 완료된다.
신체검사 결과에 특이사항이 없어 별 무리 없이 모든 서류의 접수를 끝냈다. 그런데 신체검사 결과지의 뒷면을 보고 나는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니 몇 해 전 네덜란드 홈닥터와 확인했던 검사 결과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빈혈 증상이 완화된 줄 알고 지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홈닥터의 권유로 철분제를 추가로 먹고,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다델(Dadel)을 꾸준히 먹어 상태가 좋아졌었다. 다델은 한국어로 대추야자로 불리며,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서 주로 나는 달고 찐득한 과일이다. 네덜란드에는 터키 식료품 코너를 통해 널리 익숙해진 식품이다.
검사를 받는 당일에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검사를 하나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절차 때문에 몸 상태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도 결과지를 보며 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꼈지만, 거주증 신청을 위한 신체검사 덕분에 이렇게 알게 되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증상도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