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강물이었을 것이나, 꽁꽁 얼은 위로 소복이 덮인 눈이 한눈에 가득 들어오는 창문에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앉아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바질과 양파 향이 강한 크림치즈가 빈틈없이 발라진 크런치한 빵과 가슴속엔 헤이즐넛 크림을 품고 머리엔 초코를 뒤집어쓴 큐브 모양의 페스츄리를 잘 드는 빵칼로 잘라가며 먹었다.
고소한 맛과 산미가 있는 원두 중 고르라길래 고소한 맛을 선택했으나 혹시 잘못 내어 준 것은 아닐까 싶게 새콤한 커피를 마시며, 산미가 있다는 커피는 도대체 얼마나 시큼할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읽었다.
<여름의 빌라>
하얀 눈밭을 바라보며 더운 계절 제목의 책을 읽는다.
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라 페이지마다 그녀가 여름 나무처럼 떠오른다.
혹시 암호처럼 숨겨진, 그녀가 내게 하고픈 말이 있을까 구절구절을 착실히, 입속에 있는 빵조각처럼 꼭꼭 활자를 씹어 읽었다.
여덟 개의 단편들이 옴니버스식으로 묶인 소설 중 여섯 번째 이야기 <흑설탕 캔디>를 읽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아들과 두 손주를 돌봐 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손녀딸의 시점으로 쓰여 있다. 자신의 인생을 온통 손주들에게 헌신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미 성인이 된 손녀가 어느 날 할머니 꿈을 꾼다. 손녀는 꿈속에서 만난 반가운 할머니에게서 나는 너무나 좋은 향기의 출처가 궁금해 할머니의 온몸을 뒤져보다가 할머니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할머니, 손을 펴봐." 나는 할머니에게 떼를 쓴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가 울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하지만 꿈속에서 할머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돼."
그리고 할머니는 또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조금은 고통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도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 얼굴로, 주먹을 더 꼭 쥔 채.
"이건 내 것이란다."
<여름의 빌라> P. 204
두 시간 정도를 머물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주 오래 전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양평의 어느 동네를 목적 없이 들러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을 들으며, 이국적인 주택이 즐비한 어느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내가 말했다.
"아~ 여기 거기 같지 않아?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 호수가 나올 것만 같지 않냐구!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데 우리가 정말 좋아했던 곳 말이야!!"
"할슈타트!!"
"그래 맞아! 당신이 나 사진 찍어주려 뒷걸음치다가 물풀에 미끄러진 그 할슈타트 호숫가 마을! 그 마을 초입 같다 여기!"
"그러네~"
'서로 비슷한 것들끼리 짝을 지으시오'라는 어린이용 산수 문제처럼 우리는 가는 곳마다 우리의 기억 속 비슷한 조각과 줄 긋기를 한다.
일상의 장면 장면들과 선을 그어 짝을 맞출 기억 속 조각들이 많을수록 살아가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설명한다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것.
자기만 알고 있는 조각들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싶은 것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유이며, 여러 가지 형태의 예술이 만들어지는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