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좋아하세요?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한 달 전쯤 큰 맘을 먹고, 가장 좋아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판 공연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어둑하고 막힌 공간에 있는 것이 싫어서 영화관도 가지 않는 편이지만, 다행히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답답함을 잘 느끼지 않습니다. 공연을 관람한 후여서 인지 메리 카사트의 <관람석에서(In the Loge)>(1878)에 더 눈길이 갑니다.
'나 홀로 관람'하는 여인 여인은 한껏 멋을 낸 듯 보입니다. 그런데 검은 옷을 입고 있네요. 상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화려한 여느 관람석의 여인들과 다르게 목덜미까지 올라온 검은 드레스에 조그만 귀걸이 외에는 다른 꾸밈은 전혀 없습니다. 그녀의 치장에서 상중이라는 심증에 확신이 드네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상류층인 듯합니다. 작은 오 페라 글라스를 잡고 있어서인지 손목이 살짝 불편하게 느껴지네요. 잠자리 날개 같은 얇은 장갑에 드러난 실밥 같은 이미지에도 뭘까 하며 다소 필요 없는 부분에도 신경이 쓰입니다.
왠지, 이 여인이 낯이 익습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디서 봤지?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본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의 여인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담 X'는 피에르 고트로 부인의 초상입니다. 혹시 이 여인이 '마담 X'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리겠네요. 생각이 여기까지에 이르자, 반갑기까지 합니다. '마담 X'의 관능미는 없고, 청초하고,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는 여인 같습니다. 고트로 부인이 공연을 관람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박스석을 둘러봅니다.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껏 멋을 낸 신사가 이 여인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신사의 시선을 살짝 의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뻔한 남녀 만남의 클리셰 같아, 피식 웃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인의 옷이 상복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르게 보였습니다. 상중이라 외출이 힘든 여인이 관람석에 있으니, 신사의 눈에 띈 듯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릴 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인에게 끌리는 까닭입니다. 검은 드레스와 대비되는 하얀 피부, 특이한 손동작, 오뚝한 콧날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만합니다. 클로즈업한 이여인만 또렷하고, 다른 인물들은 아웃포커스한 것처럼 선명도가 떨어지네요. 지금 여인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지만, 신사의 시선에 포착되기도 하네요. 이 바라봄과 보임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순간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이 여인은 지금 보는 걸까요? 듣는 걸까요? 문득 극장 속의 공연과 음악이 궁금해집니다.
뮤지컬, 좋아하세요 메리 카사트는 미국 출신의 인상파 화가입니다. 특이합니다. 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그녀는 파리에서 무희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에드가 드가를 만나 친분을 쌓으며,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합니다. <관람석에서>처럼 대부분 여성의 일상사를 그린 작품들에는 어머니와 아이들, 그중에서도 모녀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상류층 여인이 주인공인 <관람석에서>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저는 파리 ‘음악 국립아카데미-오페라 극장’(일명 '오페라 가르니에')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예전에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이곳에 들린 적이 있거든요. 입장료가 만만치 않아서 관람은 못했죠. 오페라 가르니에로 추정되는 장소를 그림으로 만나니 마음이 들뜨네요. 그림 속의 인물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다음에는 꼭!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관람을 하고 싶네요. 오페라글라스와 부채도 챙겨가야겠지요. 뮤지컬, 좋아하세요?
메리 카사트, <관람석에서(In the Loge)>, 1878, 캔버스에 유채, 66 ×81.2 cm, 보스턴미술관 소장
존 싱어 사전트, <마담 X(Madame X)>, 1884, 캔버스에 유채, 208.6 ×109.9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