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수 May 15. 2024

영화보기

방에 갇혀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요즘은 아주 먼 과거의 영화를 본다. 주로 6-70년대 영화가 좋지만 어쩌다 30년대 작을 보기도 한다. 전쟁 전후 상황의 냉기 서린 영화를 보면 숨이 막히다가도 프랑스 영화를 보면 ‘없던 시절에 대한 향수’나 동경이 생긴다. 그러면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버거워진다. 그래서 그냥 다 제쳐두고 작품성 있다고 평가받는 영화를 본다. 아무런 의미 없이, 눈과 귀가 즐겁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들.


우연히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봤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여성주의로도 평가받는다고 한다. 20세기말에 태어난 우리들은 여성주의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텔레비전 속 아버지들은 상석에 앉아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국자로 음식을 나눴다. 이게 내 기억 속 ’틀면 나오는‘ 드라마 장면이다. 사소한 일상부터 정형화된 모든 게 ’남성주의‘였고, 그게 무슨 주의인 줄은 알았겠나. 다들 그렇게 사니까. 가장 격렬한 피해상황을 겪은 나는 이렇게 방에서 쓴다.


2024년이 되어서야 여성주의와 남성주의를 가르는 것조차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양성평등 시대가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부모세대의 것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럼 내가 본 바르다의 영화는 자유로운가, 생각해 보면 또 아무것도 보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또 그냥 본다. 배우가 아름답고 풍경이 아름다우면 내겐 충분하다. 영화가 사상검증 대상이 된 현실이 안타까워서 쓴다. 그냥 즐기고 싶은데.

매거진의 이전글 에고가 문제라는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