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여름의 <하나레이 베이>

누군가에게 상실의 계절

by 김지수

<하나레이 베이> 관람 후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아들을 잃은 중년의 여성이 10년간 같은 장소를 찾아 아들의 흔적을 마주하고 그를 놓아주며 겪는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 상실의 정서가 일본 영화가 주는 여백의 감성에 스며들어 후반부 중심인물의 폭발하는 감정이 더욱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남편에 이어 아들을 잃은 사치 역의 요시다 요가 극 전반의 중심인물이지만 극을 이끌기보다 극이 중심인물 주변을 서성이며 시선을 두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극 중 아들을 잃은 사치는 남편의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며 하나레이 만을 찾는 인물로, 상실 뒤에 따라오는 좌절과 분노의 감정을 하나레이 만에 쏟아냅니다.



영안실의 사치가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사치가 본 아들의 마지막은 상어에게 다리 한쪽을 잃은 모습이지만 이를 확인하는 그는 무던합니다. 영화는 아들의 잘려나간 다리의 살점까지 적나라하게 담아내면서도 중심인물인 사치의 감정은 그저 건조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이후에도 아들이 머물던 숙소를 찾거나 아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유골함을 고르는 장면까지도 세세하게 담아내지만 독백 없는 인물의 감정은 후반부까지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무채색 같던 영화는 사치가 하나레이를 찾은 열 번째 여름이 되면서 선명해집니다. 우연히 아들 또래를 만난 사치는 아이들이 숙소에 묵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보드를 타며 웃기도 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점차 마음을 열던 사치는 아들과의 일상을 떠올리며 깊숙이 묻혀있던 상실의 아픔을 드러내고, 영화는 후반부 격렬해집니다.



<하나레이 베이>는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담아낸 부분에서 <데몰리션>과도 닮았습니다. 두 영화 모두 상실의 아픔에 무던하던 중심인물이 점차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 치유의 매개체가 아이들이라는 점도 그러합니다. 다만 소설 속 세계가 영화로 구현된 <하나레이 베이>는 인물의 주변 환경에 시선을 두고 서술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덧붙여, 10년의 시간차를 연기한 배우들의 미묘한 변화는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사진=다음 영화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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