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려

이러고도 아니라고?

by 므와


"아니, 이럴 거면 물어보긴 왜 물어봤대?"



최근 알게 된 그는 SNS 아이디를 물어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렇다 할 연락이 없다. 그러면서 또 내가 올리는 피드는 어찌나 성실히 보시는지 처음에는 소극적인 타입인가, 생각했지만 이쯤 되니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한숨 섞인 콧바람과 함께 폰은 내려놓았다.





<헷갈려>

인스턴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명사로, 즉석에서 간편하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

인스턴트가 비단 음식만을 말하는 것일까? 갖다 붙이기만 하면 말이 된다. 인스턴트 커피, 인스턴트 타투, 인스턴트식의 연애와 같이 이쯤 되면 인스턴트는 더 이상 명사라기보다는 형용사에 가까운 수식어가 되는 것이다.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주제에 철벽녀인 나는 인스턴트 연애를 하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 즉석은 아니더라도 연애에 소모, 소비되는 것이 낭비로 이어지지 않는 간편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이길 바란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그런 인스턴트식의 연애감정이 옳다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진지한 관계가 안 되지'라고 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괜히 갖게 된 것이 아니다.


"사랑? 사랑은 너무 먼 얘기지. 사랑 좋은 건 알겠는데 뭔가 유니콘 같달까"



아, 언제부터 우리가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 남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잠깐의 얘기에서도 연애는 몇 번이나 나오면서 사랑은 한 번 나오기가 어려워졌다. 괜히 입맛을 쩝, 다시게 되는데 앞에 맥주를 두고서도 왠지 입안이 텁텁한 건 기분 탓일까.



"좀 포기하게 되는 거지. 로또 1등은 바라지도 않고 우연히 5천 원이라도 얻어걸리면 그 날 기분 째지는 거고."

"20대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그때는 막 뭉게뭉게 둥실둥실하지 않았어? 아 서글프네"

"언제 적 얘길 하세요~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당장 지금 너 옷 입는 스타일만 해도 그때랑 다른데."



내가 20대 때 옷을 어떻게 입었더라, 찾아보자니 촌스러워서 봐줄 수가 없을 거 같은데.



"단순히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 보는 눈이 달라졌잖어. 20대 때는 외모가 가장 중요했지.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잘생기고, 옷 잘 입고, 나한테 잘해주면 좋았지."

"지금은?"

"지금은, '적당히'가 중요하지. 너무 잘생겨서 너무 옷 잘 입는 것도 부담스럽고, 나이도 적지 않으니까 안정적인 직장도 있어야 하고, 결혼은 차치하고서라도 금전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거는 싫고. 센스는 있으면 좋고? “



오히려 사랑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지금보다 어렸던 그 시절이었나?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한테 잘해주면 좋았고, 그럼 사랑하고.



"적당히, 보통은 하는 게 제일 어렵잖아. 그래 우리가. 제일 어려운 걸 바란다고. 그러니까 어렵지."



연애는 왜 할까?

연애를 하니까 사랑을 하는 건가? 사랑을 하니까 연애를 하는 건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같네.

아닌가, 그냥 연애는 연애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하면 되나? 연애는 필수고 사랑은 옵션인가? 그럼 연애는 꼭 해야 하는 건가? 사랑은 안 해도 되나?



"그럼 다음 질문. 사람들 처음 만나서 소개할 때 말하는 게 이름, 나이, 직업, 취미, 애인 유무 같은 거잖아. 그럼 이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채울 수 없으면 평균치 미달이야?"

"뭐, 미달은 아니어도 과한 관심, 과한 질문, 과한 오지랖을 겪게 되겠지? 어머 왜 없냐 있을 거 같은데~ 하는 거 있잖아."

"알겠냐구. 알면 이러고 있겠어?"

"그러니까. 그럴 거면 소개라도 시켜주던가, 불쌍하면 돈으로 주던가. 말은 누가 못 해."

"하, 뭐 이렇게 깨도 깨도 끝이 없냐. 나는 수능 치고, 대학 졸업하고, 월급 받고 하면 미션 클리어인 줄 알았는데."

"시작하면 끝도 없어~ 질문 그만하고 그냥 마셔 마셔."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마음과 달리 쓸데없이 경쾌했다.





하나를 더 마실까 말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냉장고 문을 열고 잠시 망설였다. 제한 시간이 있다. 냉장고가 어서 문을 닫아달라고 곧 울 것 같아서 달래기 위해 얼른 캔 하나를 꺼내 무게를 내려놓듯 자리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폰의 잠금화면을 풀면 몇 개의 메시지와 SNS 아이콘 위에 숫자가 떠 있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소개팅남에게 온 안부 문자를 보니 최근에 내 피드만 보고 막상 연락은 없는 그가 또 생각났다. 꼭 기다리는 연락은 늦거나 안 온다.

대충 오래전 소개팅남에게 답장을 해주고 SNS에 들어가 피드를 확인하는데 내가 최근에 올린 모든 피드의 조회한 사람 리스트에 그가 있다.



"너무 의식하는 건가?"



그는 그저 한가해서 그냥 봤을 뿐인데 괜히 나 혼자 너무 의식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는 어떤데? 아니다, 일단 다 듣고, 들어보고 말하자. 말해'



저녁에 만난 친구에게 요즘 나를 헷갈리게 하는 그에 대한 얘기를 털어놨다.

그럴 거면 왜 물어봤대? 연락도 안 하고? 나도 첨엔 이 사람이 바쁜가, 좀 소극적인 사람인가 했지. 근데 내 피드는 올리면 올리는 대로 재깍 보면서 연락은 안 하는 거야. 답답해.



'그럼 네가 먼저 연락해보지.'

'그 사람도 나한테 연락 안 하는데 먼저 하기 좀 그래서. 그래도 나는 그 사람 피드에 좋아요는 몇 번 눌렀다 뭐. 근데 그 사람은 내 피드 보기만 보구 아무런 리액션도 안 하는데 먼저 연락하기 싫더라구'



이것도 자존심 내세우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이상의 관심을 주긴 싫었다. 이래서 내 연애가 인스턴트 연애가 되는 건가.



'그래서 그 사람 맘에 들긴 하고? 관심은 있어?'



맘에 드냐, 관심은 있냐, 네 스타일이냐 물으면 뭐 하나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쁘진 않은데 그 정도까진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럼 됐어. 뭘 고민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관심 있는 상태인 거 같은데 그냥 치워 치워. 괜히 힘 빼지 말고'



그래 힘 빼지 말자 싶어서 힘을 뺐는데 그가 올린 새 피드가 다시 나에게 힘을 싣는다.

최근에 양조위의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나는 몇 번 중경삼림을 캡처해서 피드에 남겼었다. 다시 봐도 좋다 대충 이런 내용과 함께. 그런데 그 역시 중경삼림의 한 장면을 캡처해서 올린 것이다.



"이러고도 아니라고?"



자기 일상 한번 제대로 피드에 올리지 않는 그가 간만에 올린 게 같은 영화인데 우연치곤 우스운 이 타이밍.

착각인가 싶게 만들었다가 다른 의미의 물음표를 찍게 만든다. 하트를 한번 눌러줄까 하다가 괘씸한 마음에 못 본 척 피드를 넘겼다. 당신도 한번 기다림을 느껴보라고.


사소한 복수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남아 있는 맥주를 마저 마시고 기지개를 켰다.



"이제 자자!"



샤워를 하고, 머리는 바삭하지 않을 정도로 말리고, 열어둔 창문도 잘 닫고, 피워둔 캔들도 끄고, 아침 알람도 맞추고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 한 번 더 SNS 확인하는데 그가 피드를 지웠다. 내가 하트를 눌러주지 않은 그 피드!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두 손으로 잡고 있던 폰을 아래로 내려 뜨렸다. 고소하다고 해야 하나, 이러고도 아니라고? 아니면, 아니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건가. 이거 뭐지?


헷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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