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님 Jan 24. 2024

K의 합격

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5

늘 타던 지하철을 놓쳐 신경이 곤두선 아침이었다. 빽빽한 승객 틈에 서서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꺼내느라 무거운 노트북을 다른 쪽 어깨로 바꿔 메야했다.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 시험에 합격했어!

같은 대학 동기인 친구 K였다. 그 순간 팔뚝 위로 돋아나는 소름을 느끼며, 나는 얼른 답장을 보냈다.

- 정말 축하해! 지금은 출근 중이니 이따가 전화할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다 말고, 나는 K에게 메시지 하나를 더 적어 보냈다.

- 그런데 정말 정말 축하해!


K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한 것은 마흔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약 10년 전에도 K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커트라인 문턱에서 몇 차례 좌절한 적이 있다. 그녀는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시험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공무원 시험 응시 연령 상한이 폐지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늦은 나이에 시험을 준비하는 K가 매우 걱정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녀 스스로가 얼마나 큰 부담을 지고 있는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으로부터 넘치게 듣고 있을 걱정과 잔소리에 굳이 나까지 껴들어 한 스푼을 더 얹기는 싫었다. 하지만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다. 기약 없는 시험을 준비하기엔 우리는 나이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하는 만큼 연락도 뜸해졌다.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라는 변명은 참 편리했다.


그 후 느닷없이 찾아온 K의 합격 소식은 나를 들뜨게 했다. 붐비는 전철이 더 이상 짜증스럽지 않았고, 두 발은 공중에 붕 뜬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진짜로 K의 친구로구나'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K와 나는 자주 어울렸다. 아니, 오히려 졸업한 뒤부터 더욱 가까워졌다. 내가 결혼하고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 온 뒤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났다. 연락은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로 뜸해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K는 단 한 번도 내 생일을 잊고 그냥 지나간 적이 없었다. 언제나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해 주고, 슬픈 일이 생기면 위로해 주었다. 지난 이십여 년간 늘, 한결같이.


K가 발령받고 업무를 숙지하는 동안 년이 훌쩍 지나갔다. 살이 조금 빠진 K를 앞에 두고 나는 저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래, 이 나이에 신입이 되어 보니 어때? 업무는 적성에 맞고? 누가 괴롭히진 않니?

어휴, 내 선배가 자식뻘이다. 얘.

아닌 게 아니라 K의 선배는 K보다 무려 스무 살 가까이 어리다고 했다. 불편해 죽겠다는 K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너보다 네 선배가 더 불편하지 않을까'하고 되물었다. '어라, 듣고 보니 그렇겠네'라며 K도 웃음을 터뜨렸다. (2024 겨울)


작가의 이전글 아파트 주민들의 주말 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