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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님 Jan 26. 2024

머리로 하는 산책

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7

나는 곧잘 걷는다. 생각이 많을 때는 오 킬로미터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 생각의 꼬리가 길어질수록 산책의 물리적인 거리도 길어졌다.


결혼 전에 살던 친정집은 중랑천변에 서 있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한 날은 퇴근길의 버스에서 두어 정거장 먼저 내려 둑길을 따라 걸었다. 저녁 시간에도 둑길은 대낮과 다름없는 활기로 가득했다.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들은 늘 웃고 있었다. 덕분에 집에 다다를 즈음에는 머릿속이 얼마만큼은 산뜻해졌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종종 둑길을 따라 걸었다. 한 번 걷기 시작하면 큰 대교를 두 개나 지났다. 더 걸을 때도 있었다. 젊은 날은 나는 왜 그렇게 생각이 많고 복잡했을까?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물음표가 묻어있었다. 나는 머릿속의 커다란 질문 주머니를 열어 지나는 길바닥에 하나 둘 뿌리며 걸었다. 그러노라면 어두웠던 표정도 조금씩 풀렸다.


사십 대를 넘긴 지금, 그 당시의 질문 중 대부분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만 무거웠던 마음이 걷는 거리에 따라 조금씩 가벼워졌던 느낌은 기억한다. 젊은 날에는 넘치는 에너지만큼 고민의 양도 넘쳤던 것 같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도 될 것을, 나는 왜 그렇게 조급했었을까. 그 역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걸까. (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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