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책방-집수리의 여정기
평생에 걸쳐 마음 가운데 있는 소박한 꿈은
살고있는 집 근처나, 좋은 시골땅에서 독립서점, 혹은 작은 책방을 운영해 보는 것이었다.
집에 북유럽 서적이 약 450여권이 있고, 일반서적도 약 600여권이 있는
천여권이 넘는 책을 현재 30평대 아파트에 진열해 놓은 상태인데, 이 가운데서
손 댄 흔적없는 새 책 약 300여권을 가지고 작은 책방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 "작은 책방 집수리"(길담서원 이전일지)를 읽고
책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이 더욱 분명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감수하면서 체계적으로 작은 동네책방을 해 봐야겠다는 이중적인 생각,
그 변화되고 정리된 생각들이 새롭게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책의 서평을 남겨본다.
서울 서촌에서의 12년간의 길의 생활,
충남 공주시 봉황동에서의 2년간의 담의 생활,
그래서 길담서원이라고 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때마침 책방 집수리를 하는 시간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기간으로
누구나 느꼈을 단절과 고립감이 극렬하게 임한 때였기에,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서의 노동의 고단함과 고독, 외로움에 대해서도 눈물겹게 사유를 한 흔적이 남아있다.
참고로 출입구 옆의 담벼락에 쓰인 문구는 이러하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절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책방을 새롭게 꾸며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두 명의 공동저자(그리고 두 분 다 여성이다!)는 여는 글에서 그 혼란스러움과
이 책을 기록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몰랐을 땐 함부러 덤비지만 알게 되면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힘이 된 것은 무지함이었다.
위험하고 엄청 힘든 줄 알면서도 나서는 게 진짜 용기인데 우리는 집수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1년간 충분히 휴식을 하고 나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면도 없이 마구잡이로 집수리를 하면서 실수하고 빼먹고 엎치락뒤치락 얼기설기 엮어가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떠한 책방을 하고 싶은가'등을 고민했다"
"이 책은 바로 이 별채를 어떻게 수리했는지, 수리하면서 어떤 문제와 마주쳤는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갔는지를 일상생활의 변화와 함께 기록한 것이다"
- 여는 글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한다' 중,
집수리, 혹은 폐가 정리를 할 때 지붕-천장등에서 나오는 온갖 이물질은 큰 스트레스다.
이 책에서는 고양이, 쥐의 사체까지 나와서 기겁하는 이야기도 나오며
읽는 본인조차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내면의 내공이 상당한 두 길담서원의 집주인은 그때그때 상황들을 극복해 나가며
결국 2022년 2월 25일부터 문을 열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밑줄 친 구절을 소개해 본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집수리'를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노동력이 들어가는지,
어느 정도의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말이다.
-p.54 중,
철거는 타인의 삶의 터전을 살피지 않고 싹 밀어버리는 행위이고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다.
.
그냥 쫓기는 것이 아니라 안식처이자 피난처인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쫓기는 것이 내쫓김이다.
철거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폭력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
이 집을 수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체'이지만 지워서 없애는 부분도 있으니
'철거'와 '해체'를 구분하여 쓰기로 했다. 실체를 파악하고 고쳐서 길담서원을 만들겠다는 행위는
어설프고 두려운 만남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상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p.69 중,
P.S : 이 책을 읽는 중에 깊게 생각하게 한 구절들이다. 철거와 해체 이런 인문학적 상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도 아니고 열매를 수확하는 것도 아니지만 먼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깨끗한 책방이 생긴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움직였다.
-p 126 중,
헌 집을 해체하고 수리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 듯이 내 몸도 가다듬으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 삶은 '꿈꾸는 삶'이 아니라 '꿈을 사는 삶'이어야 한다고.
-p 172 중,
왜 많은 사람이 그렇게들 안타까워 했는지,
철거나 기초공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인테리어만 하라고 했는지,
철거하는 사람을 섭외해뒀으니 말만 하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제는 체력도 받쳐주지 않아서 다시 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한 일이었다.
우리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겪어본 시간이고 그만큼 삶의 폭이 넓어졌으며
어른들이 말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확인한 셈이니까.
꼭 스스로 경험해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우리였다.
이렇게 험한 일을 하면서도 작은 사고도 없이 집수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멀리서 가까이서
염려와 안타까움으로 응원하는 동무와 선생님들 덕분이었고
비슷한 상태의 집을 비슷한 시기에 고치던 이웃들의 힘이 컸다.
-p. 249 중,
P.S 이제 이들은 여기 공주 길담서원에서 꽃을 활짝 피울것이라 생각한다.
두루두루 스스로에 대한 고백과 성찰, 그리고 이웃의 헤아림도 감사하는 그 예쁜 마음, 참 따뜻했다.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문자를 모아 글을 쓰는 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구축하는 작업이다.
쌓고 모으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집이 달라지고 글이 달라진다.
-p. 259 중,
이 책은 그 눈물겨운 기록이다.
글을 쓴 두 길담서원의 주인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장차 "북유럽 작은책방"을 꾸미는 것을 꿈꾸고 있는 본인에게도 여러가지의 생각을 옷입히고,
실제적인 작업과 순간순간의 노동의 부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좋은 도움이 된 책이고
독서의 시간이었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무단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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