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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Dec 31. 2023

‘T발 C세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F

그 유명하다는 MBTI를 아직 정식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각 알파벳이 뜻하는 지점을 조합해 스스로 진단을 내려 본다면 I.. N.. F.. J 일 것 같고, 이 중에서 나랑 제일 잘 어울리는 알파벳을 고르라면 확실하게 I와 F일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친구가 물어본 "너 내가 교통사고 당했으면 제일 먼저 뭐라고 말할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다친데 없어?"라고 할 테니까. 그럼 F라고 친구가 말해줘서 "그럼 너는 뭐라고 먼저 말해?"라는 질문에 친구는 "너 보험사에 연락했냐?"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진짜? 사고가 났는데 그걸 제일 먼저 물어본다고??" 내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본 거였는데 친구는 진지하게 쳐다봤다.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그때 알았다. F와 T의 생각회로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그렇게 본다면 끼리끼리도 과학이라고 내 주변에는 확실히 F 성향이 많긴 했다. 다들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요시 여겼고 그건 일상생활에서 당연히 통용되는 디폴트 값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상황과 서사에 극도로 몰입하면서 정해진 답이 없는 대화에서도 상대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공감했다. 말뿐인 위로라고 해도 그 말의 위력이 마음까지 전해진다면 얼마나 큰 영향력으로 다가오는지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F는 함께 웃고 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요즘은 정말 T가 부럽다. 심지어 T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 이유는 타인의 기분에 쉽게 매몰되는 마음이 썩 좋지 않다고 느낀 뒤부터였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다른 이의 지나가는 말, 지적사항에 하루종일 기분 나쁜 티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자책이 심해진다. 일은 일일 뿐인데 공과 사가 구분 안 되어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의 스쳐 지나간 말까지 곱씹어 확대 해석을 하고 결국 그 사람이 날 개인적으로 미워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감정 때문에 괴롭다. 지팔지꼰, 지 팔자 지가 꼬는 것처럼 지인지생, 지 인생 지 생각대로 꼬는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나이다.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T 모여라' 제목을 클릭해서 보니 T들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나열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찬찬히 훑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그들이 스스로 진단 내린 모습 중에는 묘한 우월감과 이기적인 모습, 매정하다는 단점 외에는 좋은 점도 꽤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사고 회로가 문제 해결 중심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으니 그것을 해결하자'는 단순한 논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꽤 놀라웠다. 그래서 누가 자기 뒷담화를 까도 별 신경이 안 쓰이고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전략과 실행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에 선택에 있어서도 심지가 굳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외에도 누가 업무적으로 까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가도 그 잘못이 스스로 납득이 되면 금방 괜찮아지는 마음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나는 일단 기분이 팍 상하면 그게 쭉 오래가는데 T들의 성향은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F들은 T들에게 "너는 남의 속 긁어놓고 혼자 속 편해서 좋겠다'라고 말하는 건가(나와 내 친구 이야기)

T친구와 나는 한 가지 사건을 놓고 보는 관점이 아예 다르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면서도 나는 얼음 깨지는 걸 보며 "저기 사는 사람들 어떡하냐. 동물들 살 곳은 있나? 먹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진심으로 걱정할 동안에 T 친구는 "야 치킨 남은 거 더 없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서로 투닥대면서도 10년 넘게 잘 지내오고 있으니 역시 사람은 다양하고 골고루 함께 살아가며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싶기도 하다. 하지만 F 입장에서는,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T의 간결, 명료함은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특히 조직 속에서 강제 사회화 중이라는 T들의 속사정도 있지만 F에게도 관계가 일은 일로 분리되는 확실한 가림막이 필요한데 타고나는 성격으로 안 된다면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라도 고치고 싶다.

F에게 필요한 '스위치 OFF'

타인의 말과 감정에 공감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 세상은 그 공감이 숏츠처럼 짧고 한 번의 좋아요 클릭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서로의 눈을 보면서 하는 대화에서 상대를 깊이 바라보며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F들, 우리만의 방식이 좋다. 그러나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내가 옅어지고 그 자리에 상대가 들어앉는 완전한 매몰은 위험하다. 타인의 기분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의 선 안에서 기분이 넘어가지 않게 끌고 와야 한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의 거품만 들어내야지 그 속을 마구 휘저어 두부와 버섯까지 건져 올리지 말고 가뿐하게 찌개에 넘치는 거품만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스위치 OFF.

거품뿐 아니라 그 속의 건더기까지 건져 올릴 것 같으면 얼른 불을 꺼버리면 어떨까? 사실 나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대의 기분에 근거한 감정에 요동치는 마음이 커서 상황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분만 걷어내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사람의 말투, 목소리, 눈빛에 의미를 두지 말고 그 상황이 왜 벌어졌고, 어떤 문제가 생겼으며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회로를 돌리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감정이 상황이 덮치기 전, 스위치 OFF.

머릿속 침묵의 자리를 만든다. 미리 상대의 의중을 판단하지 말고 문제만 바라본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생각과 의견, 행동을 가지고 수백만 개의 인생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몇 가지의 유형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게 오차 범위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내게 없는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에게 배우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노력할 수 있다는 거다. 감정에 기반에 우호적인 관계를 지향하면서 상황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F도 세상에 필요하고, 상대의 말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T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그저 우리의 본투비 성격을 가지고 사회에서 부딪혀 느낀 태도를 인지하면서 내 안의 조화로움을 찾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T들의 일처리 방식에서 보이는, ‘단순한데 깔끔한’ 사고회로를 배우고 싶다. 문제가 발생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할 뿐이지 문제를 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눈치 보지 않기를!

PS. 인터넷에서 본 확실한 T와 F의 차이인 듯한 사례.

: 너랑 나랑 안 맞는 듯

- 왜? 이유가 뭐야? -> T유형

- 마음의 상처 -> F유형

와, 글 보면서 나는 내가 들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쓰임.. 역시 대문자 F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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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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