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일인분에서 이인분의 삶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혼자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쇼핑, 여행, 카페에서 책 읽기 등등입니다. 물론 둘이 할 때도 많지만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는 제가 좀 더 자주 하게 되죠.
물론 이중에서도 흔히 할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여행입니다. 신혼 여행을 제외하고 혼자 가본 적 없는 여행. 제한된 외벌이에 해외여행을 꿈꾼다는 건, 그것도 남편이 아닌 친구와 함께인 여행은 새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결혼 전엔 친구들과 모은 여행계로 1년에 한 번씩 갔던 일탈이었지만 결혼을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배우자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 더 나아가 시부모님께서 이 소식을 알리는게 도리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뒷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 돈이 모이고 친구들끼리 몽골여행 계획을 세우던 날, 신랑에게 조심스레 물어 봅니다.
“나 여행가도 돼?”
“당연하지. 괜히 돈 때문에 걱정돼서 못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니까 꼭 다녀와.”
오, 이런 천사같은 남편같으니라고.
알게 모르게 전업주부라는 역할에 자격지심을 느끼는 저에게 선물을 주는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 돈으로 꿀리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거 다 먹고, 보고 싶은거 맘껏 보고 오라는 고마운 마음입니다. 솔직히 결혼을 하고 난 뒤 여행은 포기하고 있던 차였어요. 내 개인 용돈이 두둑하면 모를까 빠듯한 생활비에 큰 돈을 써야 하고 더구나 남편은 열심히 회사 다니고 있을 생각에 맘이 무거웠던거죠. 하지만 쿨한 남편 덕에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늘 옆에 있던 룸메이트와는 잠시 이별. 내심 좋았어요.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도 좋았고 몽골이라는 나라도 기대되고 초원으로 떠나는 여정도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핸드폰 유심칩을 못끼는 바람에 연락 조차 안 되었던 자유여행. 그동안 친구들에게도 애써 드러내지 않던 전업주부의 우울감과 안정감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풀 수 있던 자리였죠.
몽골은 특별했습니다. 패키지 여행임에도 널널하게 남는 시간을 사방이 산과 나무, 소떼로 둘러 싸인 곳에서 멍하니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는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고 그 무엇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놓칠뻔 했던 일 빼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죠. 적절하게 내리는 비도 비포장 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허리 통증이 느껴지던 작은 패키지 트럭도 여행의 낭만이었어요.
[자유로울 것]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여성학자 정희진 칼럼 중)
멈추고 만족하며 안주할 수 있는 지점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특이하게도 몽골 여행은 제 기억에 ‘기도’로 남습니다. 숙소로 가는 중간, 우리나라로 치면 성황당 같은 곳에 내려 일행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탑 주위를 세 번 돌면서 세 개의 돌을 던지고 세 개의 소원을 비는데 그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막연하게 행복을 바랬을 거에요.
그리고 마음 한 켠엔 제가 좋아하는 일을 경제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이 있었을지도요.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혹는 사원에 들러 몇 번의 기도를 하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원과 희망이라는거...뭔가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행복이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지 않고 내가 만들고 꾸미는 정원처럼 가꿔야하지 않을까라고요. 알 수도 없도 오지도 못할 그 어떤 미래를 위해 지금, 여기서 내가 뿌릴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것이야말로 기도가 이뤄지는 확실한 주문이 아닐까 말이죠. 작은 정원을 만드려면 두 손에 흙도 묻히고 잡초도 뽑고, 물도 주고 햇빛도 쐬며 매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니 그런 실천이면 그 어떤 기도든 제가 선택한 인생 언저리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몽골에 왔으니 여러 바램과 생각은 치워 두고 이곳에 집중합니다. 산과 나무에서 불어 오는 바람도 맞아보고 염소 고기도 먹어 보고 그 순간 함께 하는 이들과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어제는 말을 타고 들판을 달려 봤다면 오늘은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며 맥주 한 모금에 여행 기분에 취해보기도 하는.. 살림하는 주부에서 벗어나 그 순간의 저를 오롯이 느끼는 일에서 기도했던 미래의 행복을 대신하는거지요.
여행을 마친 지금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정원을 가꿉니다. 테이블을 치우고 어제 먹은 그릇을 뽀독뽀독 닦으며 일상의 정원을 꾸리고 있으니 그때 빌었던 저의 소원이 어디가쯤에 맴돌고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