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평소 잘 보지도 않는 신문의 한 헤드라인이 눈길을 끕니다. 우리나라보다 노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금보다도 근육을 중요시한다는 기사인데요, 돈보다 근육이라~ 저만 솔깃한가요?
며칠 전 밀대 걸레로 주방을 닦다 허리를 삐끗해 디스크 3기를 얻어 이 기사가 유독 마음에 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고 집이고 뭐고 일단 내가 건강해야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요. 쿡쿡 쑤시는 허리와 엉덩이를 부여 잡으며 한동안 침대 생활을 하는데 몸이 좀 쑤셔야 말이지요. 그동안 시간이 나도 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tv 서랍 정리, 쓰레기통 뚜껑 닦기, 창틀 청소, 건전지 분리수거 등 오랫동안 보면서도 짐짓 모른척했던 자질구레한 살림거리들이 왜이렇게 눈에 밟히던지.. 복대를 차고 좀 움직여볼까 싶으면 다시 통증이 이는 허리때문에 그저 누워있는데 어찌나 하루가 무기력하고 지겨운지요.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샘솟는다는 진리를 또 아프면서 배우는 어리석은 저란 인간입니다.
전업주부가 되어 제가 가장 크게 돈쓴 일은 '필라테스' 였습니다. 회사 다닐 때 3개월 헬스를 끊고 다닌지 이틀 만에 코피를 흘려 그 뒤 하루 만에 끝난 몹쓸 추억이 있죠.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을지 여러번 곱씹으며 무려 3개월에 30만원 남짓의 회원권을 산 것입니다.
새해 결심 중 건강해지자는 마음 하나로 과감히 결제했던 필라테스 운동은 의외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3개월 단위로 근 1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아직도 아침이 되면 '오늘 운동 갈까, 말까' 50번 이상 고민한 뒤 '에라 오늘 가고 내일 가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현관을 나서긴 합니다만, 막상 다녀오면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왜 아침이 되면 다시 까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기꺼이 몸을 들어 밖으로 나가는 제가 기특할뿐입니다. 운동을 할수록 엉덩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꽤 좋거든요. 화려한 요가 복들 속의 저의 몸은 정직하게 땀흘리며 호흡과 복근을 중심으로 이리 저리 휘둘립니다. 처음엔 따라가지 못했던 동작도 이제는 재주껏 흉내도 내보고 전혀 되지 않던 동작이 어느 날 갑자기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면서 운동이 정신적으로 미치는 어떤 영향을 알게 됩니다. 그.. 뭐랄까요... 인내심? 하면 결국 된다? 그 비스무리한 어떤 감정이 나약한 저에게 장착됩니다.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요가를 할 때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계, 불가능'을 직시하게 된다. 안 된다. 아무리 해도 무리다. 패배한 기분. 그러나 그렇게 한바탕 깨지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후련함이 우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5초씩 카운트를 늘리고 1000번쯤 반복하기로.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할 테니 지금 당장 부족해도 어떠랴싶다. 돌아 돌아가면 된다. 수련은 아마도 그런 것.
정확히 모르겠지만 팔과 허리, 다리 근육을 늘리며 1초씩 참는 그 과정이 수련이었던 듯 싶습니다. 비트는 동작을 하다 보면 정말 못하겠다,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들이 꽤 있는데 1초만 참자, 참자하면서 카운트를 끝내면 그 순간이 참 개운합니다. 짧디 짧은 제 인내와 끈기가 개미똥구멍만하게라도 커지는 것 같은 기분. 그저 저만의 기분탓이라도 좋습니다. 마냥 좋은 것과는 느낌이 다른 그냥 ‘아, 뭔가 해냈어!’
저에게만 손주 얘기를 꺼내시는 시할머님의 목소리, 엄마 환갑 얘기를 꺼내는 아빠의 잔소리, 적자 난 이번 달 가계부 등등 사소하지만 껄끄러운 것들이 머리 속에서 뒤섞이다 다리를 찢기 시작하면 별게 아닌게 되더라고요. 아픈 그 순간을 넘기다 보면 숨이 차고 들이 쉬고 내쉬고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건 다 아무래도 그만이 됩니다. 그게 바로 개운한 맛인 것 같기도 하네요. 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을 움직이는게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비밀임을 이제야 몸으로 확인한거죠.
사실 근 1년 동안 하고 있는 ‘운동이 너무 좋아’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싶으면 운동을 꼭 하시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주부들에게 정직하고 반듯하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가족을 위해 종종거리며 두 발을 떼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 발을 들어 올리고 찢는 것이니까요. 이 시간만큼은 완벽하고 싶은 아내와 엄마를 잊고 엉덩이를 들고 부들부들 버티는 온전한 나를 볼 수 있으니 이것대로 재미납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다리 근육을 모으다 보면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제 두 다리로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을거예요. 휠체어가 가지 못하는 그 어떤 곳이든 말이죠.
아, 그래도 연금은 좀 넉넉하게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