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살림을 시작하니 새로운 롤모델이 필요해집니다. 직장인일땐 늘 멋진 선배가 커리어 우먼같이 일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미래의 저는 서류 속에 파묻혀 담배 한 까치 물고 미간에 약간 주름도 그리며 일하는 상상을 했었죠. 그러나 전 그런 높은 자리까지 오를만큼 야물지도, 똑똑하지도 못한 직장인이었고, 결혼 후엔 직업마저 주부로 바뀌었으니 다른 롤모델이 그려질 수밖에요.
바쁘고 평온하면서도 힘들기도 한. 하지만 안정되게 하루를 마감하는 살림이 익숙해질 즈음, '늙음'에 관한 생각이 점점 뚜렷해집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져도 마음 만큼은 더디게 성장하는 제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었어요. 엄마는 아직도 마음이 십대라고 하십니다. 문득 손을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해 서글프다고도 하시고요. 저를 낳고 키운 시간이 너무 훌쩍 없어진 기분이라고도 하시죠. 매일을 열심히 살아냈을 뿐인데 우리 모두는 결국 늙고 죽음으로 향하는 삶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허망하기도 합니다. 어지러운 빨래를 갤 때, 거품 가득 설거지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세면대를 청소할 때면 저도 모르게 여러 잡념이 흩어졌다 모아지고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떠올립니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데 왜 이렇게 '나이듦에' 집착하는 걸까요.
아마 두려워서 인 것 같습니다. 언제 돈 벌어 좋은 집에 살아볼까? 나이 들어 돈 없으면 어떡하지? 내 옆에 배우자가 없다면? 고독사하면?
결국 외롭고 고독할까봐. 그게 무서워서 자꾸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곤 꼭 결말이 어둡기만 합니다. 분명 나이 들어 좋은 점이 훨씬 많을텐데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예측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 주변의 할머니들을 찾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동화책을 한 자 한 자 학생처럼 읽던 모습이 생소했던 친할머니. 어릴 적 나를 업어 키워주시고 지금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신 우리 외할머니, 또 다른 아파트에서 역시 혼자 살고 계신 시할머님.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먹고 싶은 걸 해드시며 나름 만족하게 살고 계신 두 분을 뵈면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자식들에게 크게 손벌리지 않고 사는 경제적 자립심의 부러움과 그 이면에 보이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 저도 자주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하는데 엄마, 아빠도 이제 환갑이시니 더욱 그러하시겠지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부모와 자식도 각자 삶을 살아내기가 버겁습니다. 늙어서 자식에게 부담될까 심적으로 기댈 수 없는 두 분의 모습에서 저의 노년이 자꾸만 겹쳐 보이는 까닭입니다.
이렇듯 이제는 멀지 않게 느껴지는 '나의 늙음'을 위해 이미지가 간절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둘 것인지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 걷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을 찾는 기분이에요. 이를테면 하루종일 기분 좋게 하는 향이라든지 심심하면 읽을 책, 언뜻 보이면 귀여운 양말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말이죠.
생각해보니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대학생 때 친구와 떠났던 배낭여행 중 독일 기차역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인데요. 백발의 외국 할머니는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고운 눈으로 책을 읽고 계셨어요. 위에서 조명이 비춰 요상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지적여 보이셨죠. 그리고 제가 또 찾은 분은 작가 박완서님이십니다. 수능 문제에서만 보던 소설을 떠나 온전히 저의 시각으로 접해보니 너무 좋은 분이셨어요.
[박완서의 말]
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중략)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인데 이 ‘소박한 개인주의자’ 단어가 참 맘에 듭니다. 이기적이지만 배타적이진 않고 세상과 타인에게 온화한듯 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내가 있어야 남도 있고, 내가 행복해야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것처럼 늙어서도 적당한 이기심과 공정함을 지니고 싶습니다. 그래야 자식이 있든 없든 휘둘리지 않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소소하게 꾸미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마보단 짧은 숏컷이나 단발을 하고 베이직한 티셔츠에 청바지, 흰 운동화를 소화할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겠지요. 여기다 손목 시계 하나 차고 좋아하는 브랜드 가방 하나 딱 들면..! 지금과도 큰 차이가 없는 패션 스타일이지만 풍겨나온 분위기가 다를 거라 확신합니다. 같은 패션일지라도 비교적 젊고 탱탱한 피부의 여성이 소화하느냐와 그나마 관리가 잘 된 할머니가 소화하느냐는 천지차이일테니까요.
핵심은 ‘분위기가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 입고 있는 옷, 차고 있는 귀걸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단아하면서도 자유로운 할머니로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라는 제목처럼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나이듦의 분위기를 찾아 삼십 대인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며칠 전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적어도 칠십 초중반은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휴대폰 게임을 하시더라고요. 무릎엔 ybm 영어 학원 문제지가 놓여 있는 상태로 말이죠. 몇 정거장 지나니 손으로 밑줄을 치며 독해를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문득 저의 늙음의 이미지에 또 한 컷이 저장되었습니다. 독일 할머니처럼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ybm 할아버지처럼 영어 단어를 외울 수 있는 노년의 삶을 말입니다. 애써 젊게 보이려 하지 않고 시간의 정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냥 그 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간소하게, 있으면 있는대로 지혜롭게 쓰며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금씩 넓혀 가는 노년의 시간을 말입니다. 물론 정말 그런 생활을 하게 될 것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저의 늙음이 더욱 넓고 깊어질 수 있도록 닮고 싶은 이미지를 보이는 곳에 두고 계속 바라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