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여행이 질투나는, 나는 며느리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by 에뜰

연휴가 다가오니 마음이 복잡합니다. 은근 눈치보게 되는 문제 ‘시댁에서 몇 밤을 잘 것인가. 친정은 언제 갈 것인가’ 때문이죠 ^^ 그렇습니다. 저희는 늘 시댁 먼저, 그 다음 친정의 수순을 밟고 있어요. TV 보면 설과 추석에 돌아가면서 먼저 각자 본가에 가곤 한다던데.. 혹은 아예 따로 가는 집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예전 엄마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바꾸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지만 한 사람(남편)을 설득 하면 그 다음은 가족 전체(심지어 친정부모님까지!)의 서명을 받아야 할 일인 것 같아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당연히 그래도 될 일에 논리적 구조와 꽤 설득력있는 예시까지 제시해야 할 것 같은 시댁이 먼저냐 친정이 먼저냐.... 의 문제란....


아, 오늘 해 볼 이야기는 이것은 아니고, 명절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가까이 있다 보니 명절엔 당연히 해외 여행 가는 일이 많더라고요. 엄마와 단 둘이 일본 유후인, 친구들끼리 동유럽. 듣기만 해도 얼마나 두근대는지요. 물론 결혼 전의 저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만큼 돈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명절 전 날 큰집 가서 전 부치고 집에 돌아와 홀로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듣던 밤. 당일 새벽 다시 큰집으로 가 차례를 지내고 집에 와 낮잠 자고 홀로 카페를 나서던 일이 저의 명절 연휴 최고의 휴가였지요.


그거면 충분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며느리와 결혼한 딸의 역할이 되어보니 명절이 결코 휴가가 아니게 됩니다. 기억나세요? 어버이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자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때 맘카페가 시끌시끌했단 것을요. 물론 저도 조용히 반대했지만 며느리에게 어버이날 휴일은 어쩐지 좀 부담스럽습니다. 주말과 이어지기라도 하면 시댁에서 여행가잔 소리를 하시거나 아들, 손주, 며느리를 끼고 함께 있고 싶어 하시죠. 그건 저희 부모님이 시부모 입장이어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맞벌이라도 하는 며느리면 그 시간이 결코 유쾌하진 않을 것입니다. 친정 부모님이 멀리 사셔도 어버이날은 시댁의 날과 동등해져 결국 못 뵐지도요.

제가 너무 앞서갔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명절은 저에겐 아직도 홀로 있고 싶은 날입니다.


시댁과 친정까지 패키지 여행처럼 돌고 오면 연휴는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에서 친구들의 여행 소식은 쬐끔 질투도 나고 부럽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지무지 부러워요.

그냥 좋아하는 책 하나 집어 들고 집 근처 카페에 가서 플랏라떼 마시면서 맘에 드는 문장이나 수첩에 적고 그 시간에 푹 빠져 볼 수 있다면...! 아무 곳을 가지 않아도 친구들의 SNS 여행 사진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텐데요.




[모든 요일의 기록]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력화시켜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다. 그것이 내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어쨌든 오늘은 지났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명절 연휴를 제 것으로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무라면 의무인 며느리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집에 돌아와 맛있는 라떼 한 잔 만들어 먹으면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저의 것일테죠. 그러면 됐죠 뭐. 어떤 상황에서도 조용히 제 할 일을 끝낸 뒤 바라보면 제가 지금 서 있는 곳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이 지속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 넘어갈 수 있다는 작은 확신도 생길 것 같아요. 추석을 앞두고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 어쨌든 결혼이란 선택은 제가 한 것이니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겠죠. 모쪼록 즐거운 날들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행복한 연휴 보내시기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