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손으로 내 것을 만드는 일은 참 신기합니다. 이른 아침 밥을 먹고 잠깐의 게으른 시간을 마주할 때 슬쩍 손에 실을 걸어 놓고 수세미를 뜨는데, 10살에나 했던 이 아기자기한 일을 30대에 하게 되다니요. 시장에서 산 수세미 실과 코바늘을 준비하고 열심히 책을 들여다 보며 한 코씩 떠봅니다. 영 풀리지 않을 때는 유튜브 동영상에 자세히 나오니 얼마나 배우기 쉬운 세상인지요. 사실 돈만 있으면 완성품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에서 손으로 직접 만드는 사소한 기술은 작은 자신감을 줍니다. 특히 저처럼 산다는게 (말그대로) 정말 뭘 몰랐던 아가씨는 결혼 후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야했어요. 아 물론 지금이 선사시대여서 남자는 사냥을 나가고 여자는 옷감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의식주만 해내려 해도 일단 국 하나는 끓일 줄 알아야 했으니까요.
요리책 하나 사서 거기 나와 있는 반찬을 주구장창 만들어 보고, 조금 자신을 얻었는지 어머님 환갑때 앙금 플라워 꽃 케이크를 만들어 보겠다고 떡짓기에도 도전합니다. 나름 제 아이 돌잔치에 엄마가 만든 케이크를 선보이겠다는 멋진 포부도 있었지만 어머님 환갑 모임 이후로 케이크는 절대 볼 수 없죠. 하하! 그래도 무슨 자신감인지 마음만 먹으면 장미꽃쯤은 거뜬히 짤 거라는 믿음이 있고, 백설기 정도는 찔 줄 안다는 묘한 허세도 생겼습니다. 그 다음으로 집중하고 있는 게 수세미입니다. 좀 더 생활에 친근한 걸 만들고 싶어 고민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지만 어쩐지 제가 만든 건 동그라미도 아닌 네모도 아닌 이상한 모양이라 거품을 내는데만 충실합니다. 뭐 그릇만 뽀드득 잘 닦이면 되죠. ^^
[온전히 나답게]
빵을 만들면서 나는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고 단순한 자신감들 중 하나를 갖게 됐다. 내가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이런 잦은 자신감들이 모여 한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직장인으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느는건 눈치, 없어지는건 나의 일의 확신이었습니다. 일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그저 위에서 하라는대로만 움직이고 당연히 일에는 애정도 없이 결과도 뜨뜻미지근했죠. 그러다 살림의 주도권을 잡고 죽을똥살똥 어떻게든 하다 보니 한 끼 식사가 맛없어도 프로젝트 실패의 좌절감이 아닌 소소한 헤프닝으로 남겨지고 그곳에서 깨달은 포인트가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 늘 실패할까 두려워하던 저의 모습이 서서히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마늘과 양파만 있으면 무엇이든 맛있어진다는 확신, 그래서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굶어죽진 않겠다는 생활력이 쌓입니다. 이런게 바로 살림이죠.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정말 별 것 아닌 것들로 창조력을 발휘해 자식 새끼들을 굶주리지 않으셨잖아요. 최불암 할아버지의 친근한 목소리가 매력인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만 봐도 하나의 재료로 어쩜 그렇게 음식이 다양하게 탄생하는지.. 이런 바탕이 된 건 바로 작은 생활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조건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살림DNA가 여기서 발휘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참으로 고독한 직업인 살림을 손으로 만드는 소소한 것들이 견디게 해주고 그것이 삶을 이어가기도 하고요. 각자의 고독에서 벗어나 그 고독을 견디는 방법. 저는 수세미도 떴다가, 향초도 만들어 봤다가, 반려식물도 키워 보고 있어요. 앞으로 제 손에서 또 어떤게 창조될지는 저도 몰라요. 빵이 될수도, 그릇을 빚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무조건 잘 살아보겠다는 저의 의지일 거예요. 저희 할머니대부터 이어진 살림 DNA가 저에겐 이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손에선, 오늘 무엇이 만들어 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