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가치에 기대는 나의 노후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by 에뜰

부동산. 듣기만해도 버겁고 부담스러운 단어지만 남편 덕분에 청약통장도 생겨 처음으로 대출 상담 받으러 은행도 다녀와 보고 모델하우스 구경도 갔었던 날들입니다. 왠 갑자기 집이냐고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면 진정한 집안CEO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월급을 쪼개 예금, 적금, 보험, 연금까지 탈탈 털어 놓고 나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요 며칠이었어요. 특히 요즘 제가 집중하고 있는 일이 바로 '노후 대비'거든요. 아이 없는 삶을 살 예정이어서 노후를 잘 준비하지 않으면 주변에 폐만 끼칠 것 같아 지금부터라도 무언가를 예비해 놓고 싶은데 정작 돈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돈 얼마 없어도 젊고 건강한 몸으로 어떻게든 부딪혀볼 자신이 있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지면 없는 돈으로 노후 생활을 이어나가는게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이들수록 돈이 든든한 지원군쯤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쨌거나, 적금만으로는 뭔가 길이 보이지 않아 주변 신도시 분양도 찾아 보고, 처음 대출 상담도 받아 보고, 실제 청약도 넣어 봤지만 여전히 부동산은 저에게 무겁고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답니다.


대출 상담 받으러 간 은행원분께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온 백지 상태인 저희 부부에게 '화이팅'이라고 응원도 해주셨지 뭐예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출 금리가 얼마인지, 청약은 어떻게 넣는 건지, 순수하게 의자에만 앉아 가만히 있던 저희가 얼마나 어리숙하게 보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만한 했던 에피소드에요. 하지만 그렇게 물러나면 티끌모아 티끌만 될 것 같아 좀 더 적극적으로 남편과 이곳저곳 아파트도 보러 다니고, 분양 소식이 들렸던 주상복합도 가보아 신혼부부 청약도 과감하게(??) 넣어 보았더랬지요.

그깟 청약 넣는게 뭐가 과감한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저희 딴에는 정말 한 달에 백 만원 대출금 나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 거였거든요. 맞벌이는 물론, 정 안되면 투잡까지 고려하고 넣었던 청약이어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곳이었는데, 결국은 광탈...했지요 ^^;;

(그곳이 청약 되기만 하면 앉아서 몇 억 씩 버는 곳이라고 너무 크게 소문이 나서 쓸데 없이 좋은 기대를 했던 곳이랍니다.)

그렇게 한 동안 그 주상복합 옆 건물이 또 올라서니 봐야 하고, 부동산 카페에도 가입해 어디가 땅이 좋은지 탐색도 하고, 혼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탁, 맥이 풀렸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잡히지도 않는 큰 돈 좀 벌어 보겠다고 하루종일 돈, 돈, 돈만 욕심내는 제 꼴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단호하게 결정도 잘 못하면서 그 주제에 여기저기 알짱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어이가 없더라고요. 정말 돈을 벌고 싶으면 경매라도 배워 직접 집을 봐가며 투자도 하고, 잃기도 해봐야 하는 건데 손해는 하나도 안 보고 돈은 많이 벌고 싶으니 머리와 마음에 욕망 덩어리가 그득 차는 건 시간 문제였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런 저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어요? 로또는 사지 않으면서 로또 1등 되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요.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우리 시대의 소유 방식도 기상천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가 내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등기권리증, 하지만 뭘 소유한 것일까요? 예를 들어 아파트 902호의 등기권리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102호부터 1502호까지 십오 층으로 솟은 아파트 건물에서 땅이라곤 102호의 바닥에 깔린 일정 정도뿐입니다. 허공을 소유한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아파트 공간을 엮어낸 시멘트와 철근구조물 따위의 건축 자재를 소유한 것일까요. 뭘 소유했기에 한 평에 몇 백만원 혹은 몇 천만원이라는 가치를 매겨서 스물네 평, 서른테 평에 몇 억, 몇 십억을 주고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실체는 무엇인지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한창 마음이 돈으로 동요하던 시기 이 책을 만났습니다. 소설 토지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아주 재밌고 좋은 문장이 많은 에세이인데요. 토지야말로 소유의 핵심이라 이것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인 욕심을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것들의 나약함으로 안쓰럽게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위의 문장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실제의 가치는 한번 따져볼만 하죠. 제가 갖고 싶었던 것도 거실에서 보이는 공원뷰와 가까운 지하철이 있는 매력적인 바로 그 한 호수의 아파트였으니까요. 실제는 33평의 콘크리트였지만 가치는 공원과 지하철을 품은 어마어마한 프리미엄 이었던 것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죠? 확실치 않은 가치에 돈을 매겨 사람들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는 점말이에요. 저도 그것에 끌려 다니고요. 부동산 뿐 아니라 주식, 비트코인, 투자 모두 실제 없이 기대감과 희망으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들이지만 이걸로 사람이 웃고, 울고, 심지어는 생을 마감하기도 하니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불확실한 가치에 거는 희망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행복하고 싶어서 일을 하고, 매달 허덕이는 대출빚을 갚으며 집값이 오르기를, 주식이 급등하기를 바라니까요.


저도 알 수 없는 미래의 노년을 대비한답시고 동네와 집값에 눈을 뜨고 2기 신도시 기사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불확실에 기댈 것을 찾아 지금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잘못됐다, 나쁘다, 안되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주변의 괜찮은 분양 소식은 알아볼테고 신혼부부 기간이 끝나기 전에 청약도 종종 넣으면서 당첨될 꿈도 꿔보고(?), 재취업을 위해 이력서도 손 보며 열심히 살아갈테니까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지속되는 점에 감사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서도 대비할 것이예요. 다만 불확실의 가치에 거는 저의 기대감을 대폭 내려야 하겠죠.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적금 하나 더 넣기, 돼지 저금통 채우기, 장바구니에 있는 책 사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꽃시장 가기, 단풍 구경 하기 등등 제 삶과 가까이 있는 것들로 확실하고 단단한 삶을 채워야 할 것 같아요. 허공에 떠 있는 집 마루를 밟고 있지만 어떻게든 이곳을 비우고 또 채워가다 보면 불확실한 것들이 짙어지는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