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저만 피곤했나요!?

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by 에뜰

며칠 전 겪었던 일입니다. 길을 지나는데 어떤 아저씨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큰 소리를 내며 싸우고 있었어요. 둘 다 격앙된 목소리로 경찰을 부르겠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지나고 있는데 괜히 신경이 쓰여 계속 뒤를 돌아보며 걸었죠. 그런데 그때 아저씨가 화를 못 이겼는지 여성분의 머리를 때리는 겁니다. 같이 목소리를 내며 싸우던 아가씨는 그 순간 몸이 얼더라고요. 제가 머뭇거리는 사이 한 여성 네 명의 무리가 그 아가씨에게 다가갔고 순간 여성들이 에워싸니 아저씨도 좀 흥분을 가라 앉히신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스스로에게 너무 놀랐습니다. 그 현장을 피하지 말고 주위에서만이라도 계속 지켜봤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친 죄책감이었지요. 언제든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건데... 아저씨가 손을 휘두르니 그 아가씨도 얼마나 놀랐겠어요. 아마 같이 싸우자고 들었으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남성의 폭력을 고스란히 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분도 본능적으로 알았을거예요. ‘더 가면 내가 위험해지겠구나.’ 하는 것을요.


여성분도 도움이 필요했을거예요. 같이 싸울 사람은 없어도 누군가 자신 옆에 있었더라면 그 아저씨도 그렇게 쉽게 손을 들진 못했겠지요. 물리적 힘으로 맞설 수 없으면 수라도 늘려 폭력의 균형을 맞췄어야 했어요. 저도 집으로 가던 길을 돌아 그 아가씨 옆에 함께 있어줬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언제부턴가 미투가 세상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 여성혐오, 남성혐오, 메갈, 한남 등등 정말 다양한 단어가 생성되면서 여성과 남성이 분열되고 서로를 겨누기 시작했지요. 처음엔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가 지금은 뭔가 좀 많이 변질된 것 같아 속상한 면도 있지만 성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단 생각엔 동의합니다. 사실 공공연하게 여성들 사이에서 사내 성희롱은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잖아요. 저도 예전에 다녔던 회사 사장님에게 회식 후 엉덩이 주무름을 겪기도 했고, 은근슬쩍 노래방에서 안기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몹쓸 해프닝으로 넘어가기 바빴던 것 같아요. ‘여성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경험이지’ 라고 여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언어 성희롱만 당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정상인데 저도 그동안 비정상적인 일을 덮고 있었던 겁니다.


여자 다섯이 모여 성희롱 당해본 적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하면 아마 다섯 명 모두 들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다 한 번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 이상 기분 좋지 않은 경험이 있을거고요.

저만 해도 아까 그 사장님이랑 지하철에서 제 뒤에 바짝 붙던 남성이 하나 더 있었으니 여성에게 성희롱은 주변에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신랑에게만 물어봐도 살면서 성희롱은 전혀 겪지 못했다고 하는데 말이죠.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닌 세계적인 관심사로 급부상했으니 앞으로 남녀 성평등을 어떻게 잘 조화시킬 것인가가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이렇게 더 극단적으로 혐오를 기반하여 세계가 둘로 나뉠 순 없으니까요.


제가 아쉬웠던 건 연예계의 미투였습니다. 무명 여배우의 미투 고발은 아주 용감했고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미세한 균열을 내기에 적절했지만 할리우드처럼 대 여배우가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달까요?

솔직히 이름있는 여배우가 용기있게 고백했다거나, 그것을 언급하면서 지지한다는 응원의 목소리를 내어 줬더라면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좀 더 힘있는 목소리로 전달되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다는게 안타까웠어요. 물론 그들이 나서지 못한 이유도 분명히 있을테지만 아직 우리는 더욱 강하고 호소력있는 여성의 목소리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럼 저처럼 소심한 여성도 그들의 힘을 등에 업고 적극적으로 여성 연대에 참여해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요.


지금 이 시간에도 힘이 없는 소수자들은 강압에 못이겨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든, 아니면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구경만 할 뿐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걱정되요. 저 또한 그런 일 당하지 말란 법 없으니 더욱 조심스런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나 생각도 들죠. 우리는 평범하게 살길 원하고 존중하고 존중 받으며 살기를 꿈꾸는데 이 일이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점점 배려가 없어지고 힘만 세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진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려는 게 아니라 상대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마음을 먼저 배울 수 있다면, 성으로 역할이 나뉠 게 아니라 개인이 지닌 특성을 중심으로 역할이 분배되는 사회가 온다면 제 손녀쯤 되는 세대에는 공존의 세계가 이뤄질까요?


되려 사회 생활을 할 때보다 결혼 후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집니다. 남직원과 동등하게 일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사회 구조의 삐딱함이 더욱 잘 보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입사했지만 차이 났던 연봉, 남직원에겐 시키지 않았던 블루스 타임, 유독 남자친구의 유무와 결혼 계획 소식을 끈질기게 묻던 일들조차 서서히 바꿔 나가야겠죠. 그럴려면 저부터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점심 분리수거때 마주치던 남성을 쉽게 무능력자로 여기지 않고, 늘 아빠와 손잡고 유치원 버스를 오르는 아이의 엄마가 없나 궁금해 하는 제 자신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입니다. 쉽게 평가하지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 일이 기본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에요. 한동안 열정적으로 피어오르던 미투가 서서히 사그라지며 이곳저곳에 나올 때 피곤했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견고한 구조에 계속 돌을 던지는 게 불편했기도 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겪은 일로 다시 정신이 차려졌어요. 그 누구도 아닌 아직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여성인 내가 미투를 버리면 안 된다고요. 비록 실수는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가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알았으니 다음엔 꼭 실천해 보려고요.





[라이프 트렌드 2019]


패션의 새로운 정체성은 인류애를 지향하는 것일 수 있다. 남녀로 구분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1차원적이라면, 그 다음 단계가 모든 차별과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는 요소를 걷어내고 인간 자체에 주목하는 것일 수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꼭 읽게 되는 내년 트렌드 전망인데요. 첫 챕터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이 젠더뉴트럴에 관한 것입니다. 성별을 넘어 중립성을 지향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사회, 문화, 패션계가 주목하는 일이 ‘인간’에 대한 것이라 생각해요. 부적합한 정의의 거품을 걷어 내고 인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길 바라며...

저도 함께 합니다.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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