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장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제목 보고 놀라셨나요? ^^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 지 몰랐는데, 딱 마침 이번 글이 제가 1년 여 동안 써온 서른 번째 글이더라고요. 30회를 맞이 하여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잠시 접고, 계약직 직원이 되어 맞벌이 부부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3년 여의 전업주부 시간은 오롯이 스스로 생각과 몸을 넓힐 수 있었던 날들이었어요. 자격지심으로 시작된 생활이었지만 소소하고 평범한 날들을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었고 내 손으로 집 밥을 해 먹는 행위가 삶의 근간임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지요.
어떻게든 나의 자리를 마련하고 정돈할 수 있는 살림 자립력이 몸에 생겼다고 느껴지니 오랜만의 시회생활도 잘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예전의 저와는 많이 달라졌거든요. 기분 나쁘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걱정만 했던 몹쓸 습관에서 벗어나 이제는 해야 할 일, 하고 있는 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분류하고, 능력 밖 어쩔 수 없는 일은 마음에서 놓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무서워서 아예 시도 조차 안 했던 일들도 지금은 ‘일단 한 번 해보지뭐’ 라고 중얼거릴 줄도 알게 되었고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낑낑대다 나가 떨어진 예전 저의 직원 시절을 토닥여 주고 싶을 정도 입니다. ^^
이렇게 된 덕분은 살림입니다. 살림은 사람이 순리를 따라야 함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어질러져 있으면 치우고, 때마다 옷을 정리 하고, 제철 음식을 해 먹고, 없으면 없는대로 간소하게, 있으면 있는대로 계획하면서 사는 게 살림의 기본이자 전부입니다. 20대의 철없고 뭘 몰랐던 저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만 잘 살려 했고, 뜬구름 잡는 자기 계발에 열 올리며 '성공'이란 두 글자에 전전긍긍하며 살았어요. 타인의 하루를 전혀 몰랐어요. 남보다 나의 안위만 보호하며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24시간을 치열하고 처절하게 몸 움직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본인과 가족 입에 밥 넣는 생명력을 무시할 수 없기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그 전에는 결코 몰랐던 사실을 직접 살림을 해보니 깨닫게 됩니다. 그 누가 막노동을, 잡부를, 매춘부를 욕할 수 있는지. 가만히 앉아 남들이 해주는 밥 먹고 사는 것보다 정직하게 몸을 써 각자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에 저절로 존경심을 표하게 되었지요.
또한 살림을 하면서 고마운 점은 잡념이 강해지는 시간을 만난 것입니다. 머릿 속이 늘 시끄러울 땐 잡념이 독이 되기도 하지만 혼자서 쓸고 닦는 시간엔 이 잡념이 오히려 영양분이 됩니다. 인내심이 길러지고 차분함이 만들어지는 신기한 일이죠. 불쑥 ‘나 혼자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찾아들때면 바로 일어나 퐁퐁 거품 묻혀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립니다. 그럼 그 순간 만큼은 그릇과 쓰레기에 정신을 쏟고, 이후 깨끗해진 자리를 보면 불안감이 쓰윽 물러가지요. 반복되긴 해도 점점 불안함 주기가 뜸해집니다. 우울할 때가 와도 곧 사라짐을 알고 있죠. 아마 자연과 가까워 그런게 아닐까 해요. 날이 좋으면 빨래를 하고, 비가 오면 더러워진
현관 바닥을 닦고, 추우면 문풍지를 붙이는 일에서부터 사계절에 맞는 집 안의 소소한 인테리어까지. 자연에 순응함으로써 지금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이 정해지는 살림은 저에게 ‘안달복달 하지마. 될 일들은 자연스럽게 될거야’ 라는 메세지를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맞벌이 주부의 살림 에세이가 시작될 듯 싶습니다. 전업주부와는 다른 결의 살림 이야기가 그려질 것 같아 저도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모쪼록 살림 덕분에 단단해진 자존감이 허물어지지 않고 조직에서도 잘 적응되길 바랄뿐입니다.
다음 편에서 전업주부의 취업 도전기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