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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Sep 25. 2024

철학과 휴학생은 무엇을 할까 (24. 7.)

Chapter: 00, 01.

00. 휴학 배경


휴학 여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한 번쯤은 이 쳇바퀴와 강박에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고, 막연히 휴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라도 이래저래 걸맞은 변명거리를 찾아왔다.

그 고민이 23학년도부터 이어져 왔으니 총 3번을 미룬 셈이다.

특별한 사연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었기에 시기가 문제였는데, '휴학생'이란 신분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시기에야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4학년 2학기를 앞둔 여름방학, 나는 클릭 몇 번으로 휴학생이 되었다.


출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이 휴학이 도망이 아니길 바라고, 또 아니어야만 한다.

휴학을 한 번은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래로 휴학생이 되면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지 조금씩 고민해 왔다.

아래의 내용은 그 결과라면 결과, 정확히는 그 결과로의 진행 과정이다.



01. 졸업논문을 향하여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류의근 역)과 폴 리쾨르의 『의지의 철학1: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

한 학기를 남긴 대학생에게 '대학생활'에서 해볼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대학생 신분으로서는 (감사하게도)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누려온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학생회, 공모전, 대내 행사와 대회 등.

운이 따라줘서 경험해 볼 수 있던 일들이 참 많았다.

언젠가 이 일들을 모두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굳이 해보지 않은 일이라면... 동아리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지만, 매 순간 마음이 더 쓰이는 곳에 애정을 쏟다 보니 하지 않은 것이라 후회는 없다.

첫 만남만큼이나 마무리도 중요할 텐데, 대학생 신분으로는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만 남은 셈이다.


우리 철학과에는 별도의 졸업시험이 없다.

대신 성적이 매겨지는 졸업논문이 있는데, 전시되거나 공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졸업논문'이라는 것에 과한 의미부여를 해왔다.

예술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졸업작품과 다름없는 것 아닌가?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지난 4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나아가 대학원을 진학한다면, 겸사겸사 향후 수년의 준비 과정으로도 곁들일 수 있다.

아마도 나는 석사과정에서 '프랑스 현상학과 실존철학'을 공부하게 될 테다.

내 전제는 위의 두 저서가 '프랑스 현상학'으로 들어가는 좋은 입구이자, (프랑스 현상학이 뿌리를 두는) 후설 현상학의 좋은 해제이자 출구라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향하냐에 따라서 출구는 또 다른 입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공부가 "현상학에 대한 하나의 입문"이 될 수도 있다는 그럴듯한 첨언도 곁들이고 싶다.


할 말이 많지만 이 지면에서 모두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후에 논문을 다 쓴다면, 이 작업의 진행 과정과 결과, 내가 생각한 의의와 한계를 정리해 볼 것이다.

그래서 뭘 하는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퐁티와 리쾨르를 교차해서 읽기'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현학적인 말이지만 어떤 설득력과 생명을 불어넣는지가 내가 해야 할 잔여 작업이겠다.


덕분에 위의 1차 문헌, 그리고 2차 문헌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막연하던 것들, 모르던 것들의 윤곽이 조금씩이나마 그려져 한 걸음씩은 헤쳐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내가 공부하는 걸 본다면 웃기게 보진 않을까 싶다.

A를 읽다가 물리면 B를 보고, 다시 B에서 C로, C에 머무르다가 또다시 물리는 순간 위기감과 함께 A로 복귀하는 식이다.

이게 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교차해서 읽기'란 이런 꼴은 아니다.ㅠ



나한테, 그리고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일들, 굳이 따지자면 속상한 일들이 있던 전반기였다.

어느 드라마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왔던 말이 있다.

산부인과 교본(?)에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진위는 모르겠다.

"때로는 불행한 일들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생길 수 있다."

나약한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간다면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죽음, 고통, 외로움, 슬픔 등.

동시에 나약한 우리에게도 필연을, 최소한 그 필연의 의미만큼은 뒤집을 힘이 있기에, 슬픔을 이겨내고 위로하며, 더 좋은 현재와 미래를 꾸려나갈 순 있으리라 믿는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들이 닥친다면, 나는 그 고난에서 기꺼이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버틸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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