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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Oct 07. 2024

철학과 학생이 듣는 질문들: Q&A(1)

피할 수 없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아직 잠은 안 오는데 책은 읽히지 않을 때이다.


  어제도 일상정리라는 목적으로 지난 시리즈에 이어 철학과 휴학생의 삶을 정리했는데, 여태 브런치에 글을 남기면서 가장 많은 반응을 얻었다.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


  이 브런치 계정과 글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생각은 없지만, 철학을 공부하려는, 철학을 공부했던,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혹은 마음속 한편에 철학에의 꿈을 품었던 과거-현재-미래의 나와 닮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뮤즈랑 고민을 나눈 결과는 철학과 학생으로서 실제로 들었던 질문들과 나만의 답변들을 정리해 보자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내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는데, 아마도 이 글은 그렇게 될 것 같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 데에는 최근 어떤 철학도가 졸업을 (그리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써낸 책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언젠간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홍보글 정도만 보았지만 재미있었던 부분이, 철학과 다닌다고 하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오~/우와~' 아니면 '오.../아...' 정도로 나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철학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경험을 해봤다면 저 뉘앙스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철학과 졸업생의 저서. 독립출판물이라 이제 구입은 어려울 것 같다... 아쉽다. 학문의 길을 응원하겠습니다!





Q. 왜 철학과에 갔어요?


A. 고등학교 때 조금 본 것뿐이지만, 재밌었어요.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한다면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다른 전공을 한다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Q. 철학과 가면 진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거 배워요?

A. 네, 그런 것'도' (당연히) 배워요. 그런데 '이런 거'라는 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명언과 그 뜻을 외우는 건 아니니까요. 삶 내지는 세계를 이해하는 시각, 혹은 일종의 세계관을 학습하는 거죠. 경우에 따라서 달달 외우고 그 체계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그런 체계들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하려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경우건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거죠.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철학을 하는 게 마치 칸트랑 헤겔에게 제사 지내는 것 같다고 했어요.


Q. 철학 배워서 뭐해요?


A. (굶어요.) 글쎄요, 효용가치를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철학의 효용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정도의 효용은 뭘 하더라도 있으리라 생각해서요. 가장 중요한 건 제 인생의 의미를 충만하게 만들어준다는 거겠죠.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가 어떤 재밌는 인터뷰에서 철학을 '예술'에 비유한 적이 있거든요. 되게 좋아하는 답변인데, 철학은 예술이랑 비슷한 의미에서 전문분야라는 거예요. 제 방식대로 이해해서 답하자면, 미술 전공을 안 하더라도 누구나 그림 그릴 수 있고, 음악 전공 안 해도 누구나 연주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철학적 사유도 철학을 전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대체 왜 살지?"라는 물음에 진지한 성찰을 하는 것도 철학적 사유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걸 전공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미술도 음악도 꼭 전공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또 그걸 전공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더 아름다운 그림은 무엇인지, 그걸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걸 실제로 그려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자신의 미감을 최대한 발휘한 아름다운 가곡을 써내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철학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전공까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적 작업들이 삶 전체를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큰 효용'을 가진다면, 그저 음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세계에 대한 이해나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정도의 효용을 줄 수 있겠죠? 실질적인 효용에 대해서는 제가 답할 능력이 되진 않는 것 같아요.

내 맘대로 밈화한 질 들뢰즈(1925~1995)


Q. 그럼 현재씨가 생각하는 철학이란 뭔가요?


A. 일단 이 질문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질문이란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철학사의 거장들, 학계의 원로 선생님들 정도는 되어야 다루는 주제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이다라는 얘기를 종종 하는데, 이제 발가락 담근 제가 답하면 어차피 바뀔 답변이고, 답하기에 너무 거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그래도 현시점에서 답해보자면 '세계관을 이해하는 틀' 내지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론)/이론'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각종 "철학이란 무엇인가" 책들. 더 많은 책이 있다. 러셀, 들뢰즈/가타리는 철학사에 남는 인물들이고, 작고하신 박이문 선생님과 철학계의 거목 엄정식 선생님의 책을 소개한다.


Q. 세계관을 이해하는 틀? 그게 꼭 철학이 해야 할 작업인지 잘 모르겠어요. 충분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과학도 있고, 각종 사회과학의 역할도 있는데 '왜 철학이어야만 하죠?'.


A. 철학만이 할 수 있는 게 뭐냐, 이런 질문이라고 이해해도 좋을지 모르겠네요. 같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과학.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틀이라는 데에는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효용을 따진다면 가장 합리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과학적 지식이 가장 근원적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과학에도 여러 전제나 규칙이 있잖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학적이진 않잖아요. 예를 들어 밥을 먹는데, 내가 먹고 있는 이 식품이 어느 정도의 열량을 보충해 주는지,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이걸 먹은 내 몸의 소화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할까요? 저는 그냥 배고프면 배 채우고 싶고, 이왕 먹는 거 맛있으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누구랑 같이 먹는지도 중요하고요. 때로는 혼자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세계와 마주하는 '나'의 시선은 보통 이런 거거든요. 가장 먼저 보이는 세상이 이런 것인데, 과학적 실재로서 음식을 대하는 것은 하나의 가능한 관점이지 유일무이하고 근원적인 관점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사회과학에도 비슷한 예시를 들 수 있겠고요.


  답변이 부족할 것 같은데, 예시를 하나 더 들면 좋을 것 같아요. 가상의 대화를 한 번 만들어 봅시다.


a: "우리 정부는 정말 형편없어. 세상이 문제야 지금."

b: "왜 그렇게 생각해?"

a: "그야 지금의 소득격차라던지, 소수자 차별이라던지, 해결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잖아."

b: "그건 그렇지. 근데 그런 문제를 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a: "그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불행한 사람이 너무 많잖아. 나도 너도 그렇고."

b: "맞아. 불행할 때가 있지. 그럼 그런 것들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려나?"

a: "그렇게 볼 수 있지."

b: "그럼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겠네?"

a: "그래야지."

b: "그럼 행복이 뭐야? 돈이 많아서 소득격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 그리고 권력이 있어서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면 행복한 거 아냐? 그 사람에게는 이 사회는 정의로운 거잖아."

a: "그건 아니지. 그럼 모두가 행복한 게 아니니까."

b: "그래? 그럼 이미 행복한 사람들은 돈도 권력도 조금은 포기해야 되는 거네?"

a: "돈이나 권력이 꼭 행복의 척도는 아니야."

b: "그럼 행복이 뭔데?"

...


  아무렇게나 막 떠올려본 예시입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어서 뭔가 철학적인 대화로 빠지게 되었죠?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철학적인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철학을 했다는데,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한다면 그 자체로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런 문답의 끝에는 항상 철학적 주제가 따라 나올 겁니다. 아주 근원적이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죠. 철학은 이런 주제들을 주로 다룹니다.

소크라테스

  '르네 데카르트'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철학을 '한 그루의 나무'로 비유한 적이 있는데요, 학문이 세부적으로 분리된 요즘 식으로 바꿔서 표현하자면 잎사귀와 열매에 해당하는 건 우리에게 실질적인 영양소(실물)를 제공하는 공학이나 의학 등이 해당할 것 같아요. 줄기와 몸통에는 각종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들어갈 수 있겠고요. 그런데 결국 뿌리에는 철학이 있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영화나 만화를 볼 때, 세계관이 촘촘하려면 결국 '설정'이 중요하거든요. 설정이 첨예하고 완벽해야 스토리라인이 명확하고 인물에 몰입이 됩니다. 여기서 '설정'의 역할을 '철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괜히 철학이 만학의 어머니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닌 거죠.

르네 데카르트(1596~1650)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쓴 것으로 유명한 '톨킨'의 세계관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가 가히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계관 설정'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각 종족이 쓰는 언어를 직접 만들어낼 정도였으니까요. 성경으로 치면 '창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에 해당하는 판타지 소설의 역사를 설정으로 세워놨는데, 작가 본인이 해명할 생각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는 구절들을 보면 감탄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어떤 종족의 계보는 어느 시점에 소실되어서 전승되지 못했다거나, 난쟁이들의 언어는 비밀스럽게 전승되고 교육되기 때문에 외부에 전달된 정보가 적다거나 등이요. 이런 설정이 세계관에 몰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J.R.R.톨킨(1892~1973), 『반지의 제왕』


Q. 말하는데 엄청 신나신 것 같아요.


A. 좋아하는 얘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집니다.



Q.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나요?


A. 당연하죠. 가장 오래 사랑한 학자는 '쇠얀 키르케고르'라는 덴마크 철학자입니다. 여전히 좋아하고요. 지금은 '폴 리쾨르'라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를 좋아해요. 외에도 좋아하는 학자는 너무 많습니다. 굳이 싫어하는 학자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좌)쇠얀 키르케고르(1813~1855). (우)폴 리쾨르(1913~2005)


Q. 왜 그 학자들을 좋아해요?


A. 할 말이 너무 많아지는데, 요약하면 세계가, 그리고 인간이 갖는 '양면성'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는 철학자들이라서 그래요. 저는 지금 이 두 학자를 '실존철학'이라는 계보 아래에서 읽어내는 중인데, 실존철학이 다루는 주제들은 언제나 그런 양면적인 것들이거든요. 삶/죽음, 있음/무, 유한/무한, 우연/필연, 육체/정신 등등... 이렇게 대립되는 총체 일반을 사유하는 방식을 '변증법'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변증법은 이 두 학자보다 훨씬 오래된 개념이긴 해요. 그런데 이 두 학자의 특징은 그걸 인간의 삶 속에 녹여내서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인간이 궁금해서요.


  리쾨르를 좋아하게 된 배경은 이 리쾨르라는 학자가 철학을 하는 방식, 그리고 다루는 주제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에요. 저도 그렇지만 철학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꽤 강하거든요. 그런데 리쾨르는 철학사 전체를 위대한 사유의 여정이 남긴 귀중한 도구/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리쾨르가 타계했을 때 프랑스에서 '온갖 대화의 철학자'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저는 철학사와 대화하는 게 철학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리쾨르는 그걸 너무 흔쾌히 드러내는 학자이고요. 아까 제가 '실존철학'의 계보에서 읽고 있다고 했는데, 저는 리쾨르가 다루는 주제들이 실존철학적이라고 생각해요. 말씀드렸듯 '인간의 삶', '인간의 조건' 등을 다루는 분야인데, 리쾨르가 말년에 다다를수록 정치/사회철학적 주제를 많이 다루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끝까지 실존적 주제를 놓지 않았다고 생각되거든요. 실제로 그의 사유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첫 저서가 실존철학자를 다루는 해설서(『칼 야스퍼스와 실존의 철학』)이기도 했고요.

폴 리쾨르가 미학자 미켈 뒤프렌(1910~1995)와 공저한 『칼 야스퍼스와 실존의 철학』


Q. 그럼 읽어볼 만한 철학자나 책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아니요! 제가 읽은 책을 두고 '이 책 어땠어?' 하며 물어보면 그에 대해 설명드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걸 읽으라고 권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좋아하는 철학자는 신이 점지해 주는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철학의 변두리를 돌다 보면 '아 이거다!' 싶은 게 언젠가 찾아올 겁니다.


  저는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이 없지만, 소위 '입덕'이란 것도 그렇게 찾아오지 않나요? 어느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다가, "헐 이 그룹(혹은 이 사람) 누구지?" 이런 순간이 있잖아요. 제가 올 상반기에 한 야구팀에 입덕을 했는데, 그냥 틀어놓다가 고작 한 경기 보고 호감이 생겼고, 그다음 경기 보고 푹 빠져버렸거든요.



Q.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요? 책 읽으며 공부하는 방법이 있나요?


A. 바보같이 읽습니다.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고... 중요한 (것 같은) 부분에는 형광펜으로 칠해두고요. 형광펜보다 형광 색연필을 선호합니다. 색연필은 오래 쓸 수 있거든요. 이거 보다 저거보다 계속 돌아다니고요. 철학책이 대체로 길어서, 오래 읽으면 저는 질리더라고요. 숨통 좀 트이게 하는 2~3순위 책들을 항상 껴둡니다. 일종의 일탈이에요. 1번 책 읽다가 질리면 2번 책 읽고, 2번 책마저 질리면 3번 책 읽는 식이요. 제 개인적인 희망? 내지는 맹목적인 믿음인데, 적어도 이쪽(철학) 공부는 반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오래 앉아서 책 많이 읽고 생각 많이 한 사람이 잘하게 된다고 믿어서요. 분명 좋은 선생님, 리더, 멘토가 있으면 지름길이 생기지만, 압도적인 지름길이나 비겁한 지름길은 없는 것 같아요. 철학이 갖는 매력이라면 매력이죠.

공부하다 썼던 글

 그런데 결국 쓰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은 들어요.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어떤 입장에 빙의를 해보거나, 내 주장을 만들어서 설명해 봐야 공부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런 자리를 종종 만들어야죠. 스터디를 한다거나, 학회를 한다거나, 어디서 발표를 해본다거나.



 

  1편 후기. 재밌었다!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처음 공부할 때부터 이런 걸 정리해 두었다면 두고두고 즐겁게 읽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해봐서 다행이다.


  사실 어제 글(철학과 휴학생 2편)이 조회수 약 200을 기록했는데, 2020년에 등단해서 지웠다 올렸다 반복한 5년 차에 총조회수가 5,500을 겨우 넘겼으니, 하루에 200은 놀라운 수치이다. 물 들어오길래 노 한 번 젓자는 마음으로 써본 글인데 과정이 즐거웠어서 이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주변인들이나 브런치 댓글로 질문을 더 받아서, 반영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도 해보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해볼 수 있겠다. 콘텐츠에 도움을 주실 의향이 있는 어느 분이라도 제게 연락을 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답해보도록 하겠어요!

(물론 없더라도 3~4편 정도까지는 이어질 것 같다. 하도 들은 질문이 많아서... 3~4편쯤 되면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올라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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