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삶과 워킹맘의 삶 사이에서

둘 다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

by 복주 엄마

나는 육아휴직을 4년 했다.
꽤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았고, 그 후 처음으로 워킹맘이 되어 1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안다.
두 세계는 서로를 오해한 채 멀리서 바라보기엔, 너무 다르게 무거웠다는 것을.


전업주부로 살던 시절,
아침은 조금 더 느리게 시작할 수 있었다.
등원 전쟁이 없다는 것,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축복이었다.
아이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여유가 있었고
등원길은 늘 숨이 찰 만큼 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집은 비교적 늘 정돈되어 있었고,
밥은 좀 더 따뜻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졌다.
아이를 일찍 데려올 수 있었고
요가를 가고, 수영을 가고,
‘오늘은 나를 위해 이 시간을 써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늘 조건이 붙어 있었다.
돈이 없었다.
무언가를 살 때마다 최저가를 검색했고, 당근마켓을 습관처럼 들락거렸다.
아이 교육에 더 많이 신경 쓰게 되다 보니
이것저것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잃고 괴로워했다.
재테크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늘 따라다녔다.


자유시간이 많다는 건
곧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공부하면 돈이 될 것 같고,
부업을 하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았지만
그 영역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고, 돈은 벌리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였다.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남편은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육아와 가사에서 한 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의존은 커졌고, 참여는 줄었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쓰는 노동 시간은
워킹맘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품고 있는 시간이 길다는 것,
집이 안정적으로 굴러간다는 것,
하루의 리듬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전업주부의 삶이 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다 복직을 했다.
워킹맘이 되자, 삶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너무 바빠서 오히려 다른 고민을 할 틈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장점이었다.
하루를 버티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전업주부일 때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생각들은 잠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대가는 분명했다.
집은 엉망이 되기 쉬웠고,
남편은 전업주부 시절에 익숙해진 관성 때문에
집안일을 나누는 것에 강한 저항을 보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주 싸웠다.


어느 날,
등하원과 밥 차리기, 장보기, 자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전담하던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청소는 함께 하는 편이었고 남편은 빨래와 설거지를 전담했다.)
“네가 꼴랑 밥 차리는 거 말고 이 집에서 하는 게 뭐냐?”


그 말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날 밤, 나는 미친 여자처럼
집 근처 호수공원을 전력으로 달렸다.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이 뒤섞인 채로
숨이 찰 때까지, 생각이 멈출 때까지 달렸다.


복직 초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동안 우리는 계속 부딪혔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가사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걸 견디지 못하셨고
나는 끊임없는 잔소리와 생활 전반에 대한 간섭 속에서 숨이 막혔다.
결국 우리는 상처와 앙금만 남긴 채 헤어졌다.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마치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아서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이제 와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가사와 육아 분담의 갈등이
더 자주, 더 날카롭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워킹맘의 세계에 있을 때 나는
전업주부의 삶을 그리워했다.
전업주부로 살 때는
맞벌이로 자산을 더 빠르게 쌓아가는
워킹맘의 삶을 그리워했다.


어느 한쪽에서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모두에서
소소한 기쁨과 감사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전업주부의 삶도, 워킹맘의 삶도
도망이 아니었고, 실패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를 들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엄마는 늘 자기 자신을 가장 뒤로 미룬다.
그래서 힘든 것이다.


전업주부로 살 때에도, 워킹맘으로 살 때에도

선택이 달랐을 뿐, 애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어떤 날도 쉽게 살지 않았고, 그 어떤 날도 대충 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늘 아쉬웠다.

만족하지 못했던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 구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남기고 싶다.

“엄마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당신이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말을
오늘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건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내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사랑의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