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의 여자친구(1)

34개월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by 복주 엄마

복주가 34개월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원 시간, 어린이집 선생님이 웃으며 말을 꺼내셨다.
“복주가 나은이(어린이집 친구, 가명)를 너무 좋아해요. 오늘도 소꿉놀이 하면서 ‘여보~ 여보~’ 하고, 서로 뽀뽀하고 난리였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아들에게 물어봤다.
“복주야, 너 나은이가 그렇게 좋아?”

“엉. 그렇게 좋아.”
그리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덧붙였다.
“엄마, 나은이 엄마 전화번호 있어? 전화해서 우리 집 놀러 오라고 해.”

아직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하자 아들은 ‘왜? 왜? 왜?’를 연달아 던졌다.
그렇게 급한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날 저녁, 목욕을 하다가
아들은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은이가 좋아.”

괜히 장난기가 올라와 물었다.
“복주야, 너 맨날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 그랬잖아. 이제 엄마랑은 결혼 안 하고 나은이랑 할 거야?”

“응.”
너무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헐, 진짜?”
“응. 이제 복주는 엄마 거 아니야. 나은이 거야.”

순간 괜히 서운해져서
“엄마 똑땅해…” 하고 우는 흉내를 내며 말했더니 아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은이랑도 결혼하고, 엄마랑도 결혼할게.
나중에 내가 튼튼한 벽돌집 만들면
엄마, 복주, 나은이 이렇게 셋이서 살자.”

“아빠는?”
“아빠는 빼자.”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이가 나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자라는 장면을

웃으면서도 조금은 낯설게 바라봤다.


며칠 뒤, 드디어 나은이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복주는 아침부터 작은 핸디 청소기를 들고 집안을 쓸고 닦으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나은이가 오자, 아들은 선물로 받은 레고에 한눈이 팔려 나은이를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은이는 주말 내내 복주 이름을 부르며 오늘만 기다렸다고 했다.
아침에는 가장 아끼는 핑크 드레스를 입겠다고 고집했지만 어린이집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갈아입고 와야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글자도 읽지 못하는 두 아이는 자동차 침대 안에 나란히 들어가 책을 읽는 척을 했다.
나은이가 복주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리자 복주는 시크하게 손을 떼어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책장을 넘겼다. 밥을 먹을 때는 서로 깔깔거리며 얼굴을 쓰다듬고, 눈에서 꿀이 떨어졌다.

보다 못한 나은이 엄마가
“어유, 눈꼴셔라…” 하고 웃었다.


그날 밤, 복주를 재우며 또 물었다.
“복주야, 오늘 나은이랑 재밌었어?”

“응. 나는 나은이가 정말 좋아. 나은이랑 결혼할 거야.”
“엄마는?”
“이제 엄마는 필요 없어.”

괜히 물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밤이었다.


며칠 후에는 나은이네 집에도 초대를 받았다.
장난감이 가득한 집에서 아이들은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재택근무 중이던 나은이 아빠까지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그러다 알게 된 뜻밖의 사실.

우리 남편과 나은이 아빠가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것.
아이들 인연이 부모들 인연까지 데려온 셈이었다.

식사 도중, 나은이가 갑자기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복주랑 결혼할 거야!”

나은이 아빠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진짜? 언제? 오늘? 내일? 다음 주?”

“지금 말고, 어른 되면!”

그러고는 복주를 안고 뺨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사랑해, 복주야!”

복주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떼어내고 밥을 계속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은이 아빠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아이들은 다시 뛰어다녔고 나은이는 “오빠! 여보!”를 외치며 복주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복주는 나은이보다 나은이 동생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복주야, 나은이랑 나은이 동생 중에 누가 더 좋아?”

“나은이 동생.”
“나은이가 제일 좋다며.”
“마음이 바꼈어.”


아, 그렇지.

서른네 달 인생의 취향은 아직 고정형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등원 준비를 하던 중 복주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엄마는 결혼이 뭐인 거 같아?”

“복주는 결혼이 뭐라고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사는 거.”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도, 이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람을 좋아하고, 그 좋아함을 숨기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는 조금씩 아이의 세계에서 중심이 아닌 존재가 된다.

그게 못내 아쉬우면서도, 그렇게 자라는 것이 맞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아들의 첫 여자친구 이야기를
웃으며 기록해 둔다.

언젠가 이 아이가 정말로 나의 손을 놓고
자기 삶으로 걸어갈 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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