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는 받았는데 주소를 몰랐다!
얼마 전, 복주가 새해를 맞아 막 여섯 살이 막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하원 후, 복주가 말했다.
“엄마, 지수(유치원 친구, 가명)가 나 자기 집에 오라고 초대해줬어. 오늘 그 집에 놀러 가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지수네 집이 어딘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그래도 가고 싶어. 12층이랬어, 12층!!”
“12층만으로는 못 가. 몇 동 몇 호인지도 알아야 하고, 지수네 엄마한테 허락도 받아야지.”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복주는 같은 말을 했다.
지수가 또 초대했다며, 또 가고 싶다며.
못 간다는 말에 시무룩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건 그냥 흘려보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첫 초대,
아이의 첫 ‘가고 싶은 마음’을
무작정 막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로 했다.
복주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에게...
나는 펜을 들고,
복주가 불러주는 대로 그대로 복주의 손을 잡고 함께 적었다.
주소를 몰라서 못 갔다는 이야기,
초코 과자 먹으면서 같이 놀고 싶다는 말,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적힌 “사랑해.”
읽고 나니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됐다.
너무 투박하지 않나,
감정이 과한 건 아닐까.
그래서 커뮤니티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대로 보내도 실례가 아닐지.
대부분은 귀엽다며 괜찮다고 했지만, 몇몇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남겼다.
결국 나는 내용을 조금 순화한 수정본을 다시 썼다.
원본은 차마 못 주고,
수정본을 유치원에 가져가기로 했다.
편지를 들고 가던 날 아침,
복주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유치원에서 친구한테 물건이나 먹을 거 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줘도 될까?”
“그럼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부끄러워서 말 못 해. 같이 말하자.”
“알았어.”
“근데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해?”
“그럼 엄마가 복주가 얼마나 힘들게 쓴 건지 얘기해줄게.”
“힘들게 썼다고 하면 안 되지! 부끄러워!”
이렇게까지 자기 마음을 완전히 들키고는 싶어하지 않는 아이였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선생님은 편지를 전달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날 하원길,
선생님이 웃으며 말해주셨다.
“오늘 복주랑 지수가 하루 종일 손 잡고 다녔어요. 양치도 손잡고 같이 하고, 수업도 손잡고 같이 들었어요.”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그날 저녁,
복주는 집에 와서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하염없이, 끝없이, 유아용 소파를 거실에서 밀었다가 다시 끌어오고, 밀고 또 밀었다.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엄마, 연락 왔어?”
“지수한테 전화 안 왔어?”
“왜 안 올까? 왜 안 올까?”
급기야 한숨을 쉬더니 혼잣말처럼 말했다.
“휴… 다 의미 없다. 의미 없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섯 살 인생의 철학자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그거 알아? 지수가 오늘 나한테 엄청 웃기는 말 했어.”
다른 남자아이가 지수에게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지수가 “잘 모르겠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나서 복주에게는 “OO이보다는 네가 더 좋아.”라고 귀엣말로 해줬다는 이야기.
복주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복주는 지수가 왜 좋아?”
"왜냐면 나랑 OO이랑 맨날 왕 한다고 싸우거든? 그런데 지수가 날 왕이라고 인정해줬어."
아, 그렇지.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인정 욕구를 장착하고 나오는 생물이지.
그날 밤, 복주는 2차 편지를 쓰자고 했다.
나는 또 펜을 들었다.
이 편지는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간신히 잠들었다.
그날 늦은 밤, 지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성들인 편지에 고마웠고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존중해줘서 감동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복주는 "어떻게 하면 지수가 더 기뻐할까? 지수는 하트를 좋아하니까 하트 종이접기를 하자~!" 그래서 하트도 접어서 넣고 봉투 겉면은 온갖 스티커로 화려하게 붙이고 쿠키 봉투도 넣어서 같이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지수는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침부터 복주는 말했다.
“엄마, 오늘 어디 안 가고 집에 있지?
지수랑 먹을 요리 다 해놓고 나 데리러 와.”
지수랑 함께 할 보드게임을 고를 때는
“지수가 져서 슬퍼하면 안 되니까 쉬운 거 하자.”고 말하던 아이가
막상 게임이 시작되자
“내가 다 이길 거야!”를 외치며 모조리 이겼다.
지수는 삐지고, 복주는 또 다른 게임을 내밀고, 지수는 또 하겠다고 했다가 또 삐지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다 놀고 나서는 지수가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써서 지수 어머니가 겨우 달래서 데려가셨다.
아이들의 사랑은
언제나 직진이고,
언제나 꿀잼이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아이의 마음은
우리가 가르쳐서 크는 게 아니라
존중받으면서 자라는 거라는 걸.
그리고 그 첫 연습은 대부분 이렇게
웃기고, 귀엽고, 조금은 소란스럽게 시작된다.